엄마가 가끔 하시는 말씀이 있다.
"세월 갈수록 내 얼굴에서 울엄니 얼굴이 보여"
그때마다,
"할머니랑 엄마 얼굴은 하나도 안 닮았는데."
하며 어깃장을 놓으면서도, 엄마의 모습에서
나 또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다 세월 갈수록 내 얼굴에서도
엄마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를 닮아 다들 쌍꺼풀이 진한 동생들과 달리
나는 태생부터가 엄마 쪽을 많이 닮았다.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어쩌면 나도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게 될 것만 같다.
"세월 갈수록 내 얼굴에서 니네 외할머니 얼굴이 보여."
하고 던지는 말에, 내 아이들은 또
내게 어떤 말로 대답을 삼을까.
먼저 간 형을 추억하는 연암 박지원의 칠언절구다.
형 얼굴 속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형을 보면 됐었는데,
이제 형마저 죽고 나니, 형이 보고 싶을 때
어디에서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형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쓴 시다.
요새 세상처럼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신 선친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 그간 형의 모습을 보며
마치 아버지도 함께 보는 듯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형이 먼저 세상을 뜨고 나자
이제는 아버지도, 형도 그 모습이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가고,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늙은 자신의 모습을 냇물에 비추어
아버지와 형을 떠올리는 일이다.
시에 나오는 '건몌(巾袂)'는 두건과 저고리를 지칭한다.
상투를 다시 틀어 올리든 관을 쓰든 머리를 가다듬고
옷 매무새를 갖춰 단정히 한 다음,
냇물에 투영되는 아버지와 형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책..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인 에어 - 샬럿 브론테 (0) | 2018.07.23 |
---|---|
추억이 담긴 나의 책, 제인 에어 (0) | 2018.07.22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2) | 2018.06.21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0) | 2018.06.16 |
장영희의 <괜찮아>, 그리고 숨바꼭질 (0) | 2018.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