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독일 영화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가 만든 영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 이 말은 아랍의 속담인데, 영화 속에서는 아랍인 남자 주인공이 독일인 여자 주인공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이 말을 건넨다.
이 영화의 원 제목은 'Angst essen Seele auf'이다. 이 문장은 문법상 바르지 않다. 올바른 표현으로 고치자면, 'Angst isst Seele auf' 가 맞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주인공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가 쓰는 표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 동사 essen(먹다)의 3인칭 단수형은 'isst' 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원형인 'essen'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 기껏해야 3인칭 단수에 -s나 -es가 붙는 정도지만, 독일어는 인칭과 단/복수 여부에 따라 훨씬 더 복잡한 동사 활용을 보이다 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편리한 원형으로만 뜻을 전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문법으로 중무장(?) 한 외국인들의 경우, 말에 앞서 올바른 활용을 미리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동사도 동사려니와, 명사 또한 남성/여성/중성 명사에 따라 관사나 정관사, 형용사 등이 각각 다르게 변화하니, 그냥 무념무상으로 원형을 툭툭 던지는 편이 하고 싶은 말을 더 편하게 전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Angst isst Seele auf'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영화 제목은 'Angst essen Seele auf'이다. 두 문장의 관계는 그렇다 치고, 여기에 쓰인 동사 aufessen도 한 번 짚어볼 만하다. aufessen은 essen(먹는다)에 auf-가 결합된 단어다. '먹는다'는 의미에다, 부가적으로 '먹어치워버리다', '다 없어질 때까지 먹어버리다' 정도로 번역된다.
역자는 aufessen이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잠식한다'로 번역했다. '잠식한다'의 '잠'은 한자로 '누에(蠶)'를 뜻한다.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니, '누에가 뽕잎을 먹듯 조용히 침략하여 들어간다' 라고 나온다. 원래의 aufessen과는 의미에서 좀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더 멋진 표현이 되었고, 우리의 정서에는 훨씬 더 어울린다. 단어의 의미만으로 보자면 괴리감이 좀 들지만, 그와 별개로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거슬림이 거의 없으니 옳은 번역같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 파스빈더 감독도 독일인이지만, 그 또한 올바른 문장보다 영화의 내용에 더 어울리는 '틀린 독일어'를 제목으로 선택했으니, 그러고 보면 예술에서의 자유로움은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특히나 제2의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잠식한다'라는 표현은 참 잘 고른 표현이라 생각된다.
언젠가 본 동화책 속에 'House'라는 글자 대신 'Hause'라 써놓은 동물 주인공의 집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곰돌이 푸 같은 "동물"이기에 집에다가 '집'이라고 쓰면서 철자를 잘 몰라 틀리게 적었던 것인데, 어른의 눈으로 보자니 더욱 귀여운 감이 들었다. 물론 역자가 주석을 통해 일부러 철자를 틀리게 표기한 것임을 알렸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몰랐다면 아마도 책에 '오자(誤字)가 있다고 출판사로 연락이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불안을 가져보지 못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불안은 정말로 누에가 잎을 서서히 먹어치우듯, 해결의 기미가 있을 그날까지 한 사람의 영혼을 끝없이 파괴한다. '불안은 영혼을 먹어치운다'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 어울리지도 않고 영화 제목으로도 별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보면 볼수록 참 잘 고른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
'책..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님을 생각하며 -연암 박지원 (0) | 2018.06.26 |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2) | 2018.06.21 |
장영희의 <괜찮아>, 그리고 숨바꼭질 (0) | 2018.06.14 |
덤벼라, 빈곤 (0) | 2018.06.06 |
지방도시 살생부, 지방소멸에 관한 책 (0) | 2018.05.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