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맛보기로 살짝 올랐던 환율이 잠시 묶이는가 싶더니, 오늘 주식 폭락과 더불어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나마 마감 시각이 가까워지니 좀 더 안정되어가고는 있지만, 얼마 전과 비교하면 특히 엔화의 강세가 뚜렷하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42원으로 전날 대비 5.20원 올랐고, 원-엔화는 1,017원으로 전날 대비 13.8원 올랐다. 1,020원까지 도달한데다, 최근에 상승폭도 컸기 때문에 엔화에 더 주목하게 된다.
나는 환율에 관심이 많다. 우연찮게도 환율이 대거 오를 때마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때 환율 관련 이런 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화가 비쌀 때였다면 환전을 해서 나갈 생각조차 안 했을 텐데, 출국을 하고 나면 환율이 급등하곤 했다.
1997년 이래 독일에 있으면서 IMF를 맞았다. 셰어하우스에 함께 살던 독일 친구들이 "너네 나라 큰일 났다!"고 할 때도 어떤 큰일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인터넷도 안 되던 시대였고, 방 안에 텔레비전 하나 없던 때라서, 듣는 거라곤 독일 라디오 방송 뿐이었다. 정각마다 3분~5분짜리 뉴스가 들려오긴 했지만, 아시아 끝자락 어느 나라의 사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독일에 가기 전, 한 일 년 빡세게 일해 모은 돈을 국내 은행에 넣어두고, 그 중 1/3 가량만 독일의 슈파르카세(Sparkasse)로 송금해 둔 채 시작한 독일 생활이었다. 당시는 유럽의 화폐가 통합되기 전이라서 화폐 단위도 마르크(DM)였다. 어렵게 모은 돈이라 쉽게 쓸 수 없었기에 1 마르크 동전 하나도 허투로 못 쓰던 그때, 그래도 그곳에 있으면서 운 좋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되어 일도 할 수 있었다.
재테크니 뭐니 알지도 못 하던 때였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르크화를 저축하게 되었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국내 은행에 모셔두고 간 돈에 뜻밖의 큰 이자까지 붙어 있었다. IMF 당시 연간 이자는 무려 20%에 달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수중에 마르크는 가치가 몇 배로 오르고, 국내 통장에 입금해 둔 원화도 새끼를 치고 있었으니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한 셈이다.
세월이 흘러, 2008년에 새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독일에 다시 갔다. 워낙에 슬로우 하게 가는 독일이다 보니 통장을 만들고 인터넷을 까는 데 한 3주 정도가 훌쩍 지나갔다. 당장 한 달 정도 쓸 돈만 환전해 지참하고 나머지 돈은 한국 통장에 둔 채, 계좌를 트게 되면 입금해 달라고 동생에게 부탁해 두었는데, 독일에서 인터넷을 깔고서야 환율을 확인해 보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한국을 떠난지 3주 만에 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은 가능한 때였지만, 폰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때는 아직 아닌, 폴더폰이나 슬라이드폰 시대였다. 더러 노트북으로 근처의 넷선을 잡아 불법으로 쓸 수는 있던 때지만, 그건 비싸고 좋은 노트북이 있을 때 이야기고, 당시 내 노트북은 그런 노트북이 아니었기에 집에 인터넷을 깔 때까지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출국 때 1유로 당 1,200원대였던 걸, 결국 1,570원으로 환전, 송금받았다. 그러고 나니 며칠간 답답함에 잠도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글로벌 위기라니 환율이 당분간 내릴 것 같지 않아 2년 체류 비용을 모두 환전했는데, 생각보다 확 줄어든 자금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고 한꺼번에 바꾼 게 과연 잘한 짓일까 뒤늦은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계속 급등한 유로화는 결국 2천원 가까이까지 올랐고, 그제서야 위안 삼아 머릿속에서 숫자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비용을 아껴 쓰거나 체류 기간을 단축하는 길 뿐이었다. 외국에서의 삶은 빠듯했지만 그렇다고 나만 힘든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 IMF 때와는 달리, 글로벌 위기 때는 독일에서도 쓰레기통을 뒤지고 구걸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무릎을 꿂고 앉아 간절히 구걸하는 걸인도 보았다. 물론 그들이 독일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혼자만 힘든 상황은 아니었음에 절망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글로벌 위기라 여러나라가 감당하는 만큼 어쩔 수 없다 여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의 환율 급등은 수출 진작 차원에서 새 정부가 야심차게 환율에 개입한 결과였다. 환율이라는 국제 질서를 정부가 주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그때 알았다.
체류 기간과 비용을 최대한 줄여 2010년 귀국한 뒤, 수중에 있던 유로화를 모두 매도했다. 당시 매도가는 1유로당 1,680원이었다. 독일에서 계획했던 비용을 줄여 총 소요 비용의 1/3 정도가 남았고, 유로화로 바꿨던 때보다 더 비싼 가격에 되팔았으니 손해는 많이 줄어든 셈이다.
그로부터 또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의 유로화, 얼마 전까지 오래도록 1,200원대였다가 최근 들어 1,300원대를 왔다갔다 한다. 유럽이 공동체가 되면서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오늘 유로화 환율은 안전자산인 달러나 엔화와 같이 갔다.
오늘 환율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제 달러나 엔화 가치가 낮아졌을 때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환율이 급등했던 때는 최근 몇 년 동안 북한 리스크 빼곤 없었다. 이번처럼 급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관해서는 저마다 개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이제는 그 옛날처럼 '몰라서', '인터넷이 안 돼서' 라는 이유가 통하지 않는다.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 그것만이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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