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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악당의 기본 매너

by 비르케 2009.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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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기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내가 어릴 적에도 요술공주 밍키, 꽃 천사 루루, 나아가, 세일러 문 등등, 텔레비전 속 어린 주인공들의 변신은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곤 했다. 현란한 화면의 움직임 속에서, 어린 주인공은 아름다운 모습의 성인으로 변신을 하고,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거기에 맞는 변장을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우선 변신을 위해 꼭 필요한 요술봉이 있어야 한다. 웬만한 마술은 부릴 줄 아는 똑똑한 요술봉이다. 
거기에 악당에게도 필요한 룰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변신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 

남자아이들 캐릭터들의 변신에는 요술봉이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멋진 변신 동작들이 있어야 하고, 현란한 화면은 마찬가지로 필수이다. 

남자 아이들에게 뿐 아니라 여자 아이들에게도 나름 인기가 있었다 하는 파워레인저는, 몇 개의 시리즈가 연이어 나왔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는데, 반갑게도 독일에서도 간혹 텔레비전에 등장한다. 
  
머리에 헬맷을 쓰고 변신을 하여 악당과 한판을 벌일 때의 모습은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나오던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주인공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나올 때는 기분이 묘할 정도로 낯선 모습이다. 

일본에서 만든 프로그램에다 자체 제작을 더한 것인지,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와는 너무도 판이한 서양인의 모습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동양인 파워레인저가, 서양에서는 서양인 파워레인저가 지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흑인들만 사는 나라에서는 당연 흑인 파워레인저들이 지구를 지킬 것이다. 

낯설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독일의 레인저들도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데에는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 비하면, 악당들의 모습은 괴상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매너 한번 끝내주는 악당들... 
그들은 절대로 레인저들의 변신 도중에 끼어드는 법이 없다.

이쯤 되면 이 악당들의 기본매너도 본받을만 하지 않은가, 주인공을 위해 기다려주는 마음...
온갖 나쁜 짓에 얍삽한 짓을 다 하면서도, 주인공을 띄우기 위해 변신이 끝나기 까지 늘 잠자코 기다려주는...
 
꽃미남 주인공들 말고, 때로 못생긴 주인공에 잘생긴 악당이 나온다면,
그리하여 변신을 위해 별별 쇼를 다 해대는 레인저들 옆으로, 
그들의 변신이 끝나기 까지 꽃미남 포즈로 과묵하게 서 있는 악당의 모습이라면, 가히 매력적이지 않을까..

아이들 프로그램을 보면서,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는 걸 보면,
부활절 방학을 맞아 신이 나 있는 아이들과 반대로, 엄마인 나는 이 시간이 무료하긴 무료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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