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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 산책..

가을 냄새 묻어오는 산책길을 가다

by 비르케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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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위례길 제2코스 위례강변길 한 곳에 당정뜰이란 데가 있다. 며칠 전 다녀왔다가 포스팅이 늦어져버리는 바람에 이제야 올리게 된다. 그때도 나뭇잎이 하나둘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가을이 더 깊숙이 찾아와 있을 것 같다. 

 

흙에 떨어진 나뭇잎

가을 냄새 묻어오는 산책길을 가다

 

지난번 당정뜰에 산책 나갔다가 수크령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다. 그 식물이 '수크령'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줄은 그 옆에 있던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생긴 것은 흔한 강아지풀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강아지풀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고,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도 참 예쁘다. 나비 따라간 곳, 결초보은의 수크령

 

 

 

이번에도 수크령 나부끼는 길을 걸어간다. 가을이 성큼 왔다는 게 느껴질 만큼 서늘한 날씨다. 이미 비가 한 차례 지나갔고, 대기에서는 눅눅한 풀냄새가 진하게 묻어난다. 수크령이 하늘을 배경으로 나올 수 있도록 카메라 위치를 더 낮춰본다. 

 

 

 

수크령 풍경
수크령 모습

 

하늘하늘 수크령이 넘실거리는 산책길 참 아름답다. 일 년 사시사철마다 어울리는 꽃이 피어나고 관목들이 자라고, 가을이 되면 노랗게 빨갛게 단풍까지 물들이는 자연이 참 신비롭다. 이쯤에 딱 어울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을 나도 모르게 떠올려보게 된다. 

 

 

릴케의 시, 가을날
가을날 - 릴케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대단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워주세요

그리고 들판에는 바람을 놓아주세요

 

이틀만 더 남쪽의 햇빛을 주시어

마지막 과실들이 영글도록 해 주세요

그들을 완성시켜 그 마지막 단맛을 짙은 와인에 깃들게 해주세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 그대로 머물 것입니다

 

깨어서 읽고 긴 편지를 쓰며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길을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가을을 수확의 계절, 완성의 시간으로 보고

마지막 결실을 잘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가을이 지나도록 집을 짓지 않았다면 이제는 집 짓기에 이미 늦었듯이,

아직까지 혼자인 사람도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늦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시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

 

독일의 이르고도 매서운 추위와 타인에게 냉담한 문화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겨울과 끈끈한 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사람에게 목메는 시절도 아니니까.

다만 릴케의 감성을 공감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댓잎에 방금 내린 빗물이 얹혀 있다. 남도에서 주로 자라는 대나무는 추운 지역으로 올라올수록 신우대로 변한다. 신우대는 키가 작고 줄기가 가느다란 대나무인데, 내가 못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귀하게 눈에 띈다. 

 

 

 

하남 당정뜰 메타세콰이어 길

 

메타세콰이어 길로 나아간다. 이 길은 사실 가장 먼저 진입하게 되는 곳이지만, 같은 루트를 하도 많이 다니다 보니 이제는 발길이 닫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닌다. 가까이에 사는 분이라면 메타세콰이어 보러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여기 당정뜰에 꽤 긴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고, 운이 좋으면 홀로 이 멋진 길을 다 누려볼 수도 있다. 

 

 

 

며칠 전에 찍은 사진 속에서도 벌써 메타세콰이어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이라 나무 향도 꽤 진하게 느껴졌다. 

 

 

당정뜰 메타세콰이어 길

 

메타세콰이어 길 진입로다. 이 포스팅은 이 길을 거꾸로 거슬러서 나왔다. 작년에만 해도 입구 쪽에 트릭아트 그려놓은 게 선명했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는지 그림이 형체도 몰라보게 다 지워졌다.

 

 

작년에 사진 찍은 당정뜰 메타세콰이어 길 트릭아트

 

작년에 엄마가 놀러 오셨을 때 당정뜰에 같이 갔다가 찍어드린 사진인데, 이때는 바닥 그림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보였었다. 불과 일 년 사이에 그림이 이렇게나 빨리 지워져 버렸다. 

 

 

 

 

중간에 재밌는 걸 발견했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스마트폰으로 연달아 찍다가, 모르고 '라이브포커스'라는 기능을 누른 채 사진을 찍었는데 이랬던 사진이 아래와 같이 찍혔다. 잘 찍힌 사진은 아니지만, 배경을 흐리니 나름 분위기 있다. 일종의 아웃포커싱 기능이라, 특히나 음식 관련 사진처럼 한 군데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흐리게 연출하고 싶을 때 유용할 것 같다. 배경흐리기 크기는 따로 설정이 가능하다.

 

 

라이브포커스로 찍은 사진
라이브포커스 기능으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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