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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기억력이 좋아 슬픈 사람

by 비르케 200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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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추억들을 만들고 동시에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잊어 버린다. 또는 잃어버린다.

 

그게 사람임에도,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일반적인 그 누군가 보다도 과거를 덜 잊어 때로 힘들 때가 있다.

어릴 적에도 나는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고,지나간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지나간 일들을 되뇌는 것은 젊은이가 할 짓이 못 된다"

 

나는 소위 애늙은이... 였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그 세월과 더불어 내 기억들도 퇴색되어 가고는 있다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어디선가 예전이랑 비슷한 길과 느낌과 냄새를 되뇐다.

 

작년, 독일에 들어오고 나서 몇 달 후, 10년 전 내가 살던 곳 부근에 가본 적이 있다.

 

가장 큰 느낌은 서글픔이었다.

 

속속들이 생각나는 골목, 골목들...

너무도 익숙하게 되짚어 가게 된 모퉁이 산책로 입구...

 

그때의 추억들이 불현듯 한꺼번에 머릿속을 점령했기에 ...

그렇다, 나는 기억력이 너무 좋은 나머지 가끔은 슬픔을 자초하는 사람이다.
지나간 추억이 떠오름에 그저 기쁘기만 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좋은 기억이라도 그것이 과거이기에 조금은 서글플 듯 하다. 

그 상태 그대로 지금도 진행형이라면 그 또한 진정한 과거가 아니기에 기억이나 추억이라 부르기엔 다소 민망한 부분이 
분명 있을 테고...


문득 내 집을 들어서면서 드는 낯설음..
언젠가 이 곳을 떠나고나면 나는 또 이곳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늘 다니다가도, 발 아래 계단에 어느 날 새삼 놀라듯,
이른 아침 아이들을 바래다 주고 오는 길에,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는 스스로에게 문득 놀란다.

계단의 존재를 모르고 층계를 오르면 다칠 일이 없다. 
불현듯 계단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발이 이내 제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휘청거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길 위에서 나는 생각한다.
 

'아, 내가 여기에 있었지. 
언젠가 나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돌아볼 나의 현재가 
바로 여기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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