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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은수저

by 비르케 2009. 3. 21.
300x250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 쓸모가 없어진 유아용
은수저 세트를
금은방에 가지고 갔다.
 

실은 지난번에 한번 금은방에 다녀온 적이
있다.
금값을 따라 은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식기 서랍 안에 있던 이 물건을 떠올려 들고 나간 것인데, 생각보다 적은 가격을 부르기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노라 하고
집으로 그냥 돌아왔었다.
 
그게 바로 며칠 전인데,
오늘 다녀온 다른 
금은방에서도
그때와 똑같은 가격을 부른다.
11유로 48센트...
그걸 또 반올림해서, 결국 "11유로 50센트"..
 
국제 시세따라 독일 금값도 많이 올랐음은 이미 뉴스에서 들은 바가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독일에서는 은의 경우 몇년간 거의 변함이 없다고 두 군데 가게에서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이 은수저 세트는 큰애의 돌잔치때 지인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다.
있으면 요긴할 거라던 지인의 말과는 달리,
쓰긴 썼으되
생각보다는 많이 쓰질 못 했다. 

온도의 차이에 스테인레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조금만 뜨거워도 아이들의 순한 입술을 델까 안 꺼내게 되고,
설령 아이스크림 같은 걸 뜰 때도 너무 차가워지기 일쑤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이 숟가락으로 뭘 먹을 때마다 손잡이까지 뜨겁고 차가워지는 통에, 아이들도 다른 숟가락으로 얼른 바꿔 들곤 했었다. 게다가 계란반찬이라도 해서 먹일 양이면, 숟가락이며 젓가락, 포크를 막론하고 온통 새까매지기 일쑤였다. 

이유를 몰라하는 아이들에게 계란의 어떤 성분때문에 은 색깔이 변하는 거라 설명했더니, 대뜸 큰애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예전에 임금님들은 계란도 못 먹었겠네요."
독소를 가려내기 위해 임금님들도 은수저를 썼다는 말을 안 잊고 있다가 그와 연관지어 하는 말이다.

숟가락 위의 검은 색깔을 보면, 계란인 줄 알면서도 결코
입맛이 돌지는 않았을 법도 한데, 그야 알 수 없는 일이고... 이 '계란'이란 녀석때문에 
은수저를 벅벅 문지른 적은 돌이켜보니 꽤나 있었던 듯 하다. 덕분에 작은 흠집투성이가 되어 버렸지만... 

'오늘은 기어이 팔고 오겠다' 작심을 하던 차에, 외출하기 전, 그간의 정을 생각해 사진도 한 컷 찍어 보았다. 
100그램이 채 안 되는 가벼운 무게, 그 속에, 순은 함량도 그저 미미하다고 한다. 
유쾌한 듯 오케이 하며 팔아치우고 가게를 나왔지만, 
어쩐지 종일 섭섭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물거리던 작은 입을 한 갓난쟁이가 
일어서 제 발로 걷기 시작하던 때부터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애들에게 밥을 먹여 오던 숟가락과
과일을, 간식을 먹여 주던 포크, 
그리고 실컷 실랑이하게 하던 젓가락 두 짝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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