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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도시락 이야기

by 비르케 2008.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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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어째 몸이 으실으실하니 심상치 않다 했더니만,

드디어 코감기, 목감기에 열까지...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도저히 수업 들으러는 갈 수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더니,

부엌에 도시락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 있다. 

작은 아이 도시락이다.

이런, 아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놓고 가다니..

 

 



놓고 간 도시락을 보니 속이 쓰리다.

아니, 그보단 자주 물을 마셔대는 녀석이 물병까지 두고 갔으니 그게 더 속상하다.

  

독일 학교엔 급식이 없다.

다른 학교 사정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점심을 가지고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 큰애를 이 곳 학교에 넣었을 때,
도시락 보내라는 담임선생님 말에,

'뭘 싸주나?' 고민하게 만들던 그 도시락...

그것도 잠시.. 문득 어느 외화에서 본 장면이 스쳐갔다.

가족마다 분주한 아침,

애들이 스스로 자기 빵에다 땅콩 크림이나 잼을 발라 가방에 넣어 가던...

 

그렇게 잼이나 땅콩크림 바른 빵을 며칠 싸주었더니,

어느 날인가 큰애가 투정(또는 투쟁?)을 한다.  

"다른 애들은 다른 것도 싸 오는데, 나는 맨날 식빵에다 잼이예요?"

"그애들은 뭘 싸오든?"

"빵이 동그랗구요, 빵 속에 고기도 들어 있어요."

"웬 고기? 햄버거?"

"아니요, 생고기요.(아마도 살라미(Salami)를 말하는 듯..)"

확인하러 가볼 수도 없고, 이곳 애들은 대체 뭘 먹고 사는지..

 

예전에도 독일에 두 번이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설령 점심이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 와서 먹던가,

아니면 '멘자 Mensa'라고 불리우는 대학 구내 식당을 이용했었다. 

뭘 싸 가져간 거라곤 물 내지는 과일밖에 없었으니, 그런 내가 독일 애들의 도시락 메뉴를 어찌 알겠나..

더군다나 '도시락'이라고 하면 한국엄마 정서상 괜스레 부담이 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초등학생 엄마로 몇 개월 살다 보니 이제는 그나마 답이 조금은 나온다.

 

처음 '도시락' 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렇듯 부담을 느꼈었던 건,

아마도 삼시 세 끼 갖춰 먹는 우리 식생활과도 연관이 있었으리라,

'점심'을 싸주는 거니까,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음식을 보여주는 일이니까..

실제로 애들에게는 때로 부끄러운 도시락도 있기 마련이다. 

어른의 눈으로야 어떠랴 싶지만...

 

하지만 겪어 보니 이들의 도시락은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간식 정도...

든든하게 먹자면, 버터나 크림치즈를 바른 후 햄을 끼운 빵이나 잼 바른 토스트,

그게 부담스러우면, 그냥 바나나, 사과, 당근 등등 과일이나 야채만 가져오는 애들도 있다. 


도시락을 안 가져갔으니
아무리 배 고파도 집에 와 점심을 먹어야 할 판이지만,

며칠 전 신문에서 본 걸 떠올려 보면

빵이긴 해도 든든히 아침 먹고 나갔으니 점심 한 끼 조금 늦게 먹는 게 대수랴 싶기도 하다.

 

신문에 의하면, 독일에도 아침을 굶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보통은 시간이 없어서지만(부모도 출근하고,아이들도 피곤해서.. 우리나라 사정과 다르지 않다),

일부는 진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굶는 경우도 있다 한다.

 

실은 유노의 도시락통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한끼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내 어느 단체에서 나눠준 것이다. 

 

 

 

신문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2002년 베를린에서 시작된 '도시락 선물하기(Bio-Brotbox-Aktion)' 운동을 본받아,

3년 전부터 신입생들에게 학기 초에 도시락을 제공하게 되었는데,

올해도 2500명 신입생들이 이 도시락을 선물 받았으며, 독일 전체로는 185,000 개에 달한다...    

 

처음 이 도시락을 유노가 가져왔을 때, 담임선생님의 개인 선물인 줄 알고 무척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고마움을 뭘로 답하나 고민하던 차에,

다음 날 위의 신문을 통해 그제서야 제대로 된 정황을 알 수 있었다는...

아래 사진은 선생님 선물인줄 알고 너무도 고마워, 포장을 뜯기 전에 기념으로 찍은 거다.

아직도 유노는 이 도시락이 선생님의 선물인 줄 알고 있다. ^^

 

도시락 안에는 아기자기 놓여 있는 몇 가지 먹거리가 들어 있다.

전부다 Bio상품(친환경 상품)이다.

내용물은,


랩에 싸인 잡곡빵 두 쪽/미니 잼과 미니 땅콩잼 각각 한개씩/당근/참깨로 만든 강정/어린이용 차(茶).  
 

 

 

친환경도 아니거니와, 아무리 10여분 만에 싼 도시락이라지만,

빠뜨리고 가니 지나다닐 때마다 자꾸만 눈이 가는 건 사실이다.  


오후 1시에 끝나 버스 타고 집에 오면 2시...

그때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어찌 견딜까나, 어린 녀석이..

내가 서둘렀던 게 잘못이었다. 얼른얼른 준비하라고 몰아댔으니...

 

아, 쉬어야 하는데,

블로그에 글 올리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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