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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버스에 올라...

by 비르케 2008.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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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망이 대부분 잘 짜여져 있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은 체계적이면서도 편리한 대중교통 체계로 단연 손꼽을 수 있는 나라이다. 차 없으면 이동이 힘들다는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 누구든 독일에 오면 대중교통의 편리함에 아마도 처음엔 넋을 잃을 것이다.

마을 구석구석까지, 거미줄처럼 엉킨 철도망과, 버스와 전철.. 그로 인해 어디든 편리하게 갈 수 있으며, 대중교통이라 해도 대부분 깔끔하고, 아무리 북적거리는 시간대라 하더라도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하게 운행되지는 않을 만큼 쾌적하며, 차 시간도 거의 대부분 정확하게 지켜지는 편이다. 그러니 웬만한 도시에서 라면 세계 전역에서 온, 덩치 큰 베낭을 맨 여행객을 만나기 가히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뷔르츠부르크(Würzburg)에도 밀물처럼 가이드를 쫓는 일군의 행렬들이 끊이질 않으며, 독일어 외에 다른 언어를 듣게 되는 건 시내에 있는 이상은 어찌보면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일상'일 따름이다. 

그 많은 객들이 오가면서 때로 벌어지는 정당치 못한 '무임승차'도 시로서는 상당히 골머리 아픈 일이 되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유럽에 갔다가 무임승차 한 사건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다른 유럽 국가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독일에서는 버스나 전철 승차시 표검사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실정은 비슷하리라 본다. 표 검사를 일일이 하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씩 가뭄에 콩 나듯이 제복을 입은 이들이 올라와 불시에 표검사에 돌입한다.

무임승차한 사람을 가리켜, 독일어로는 '슈바르츠파러 Schwarzfahrer' 라 부른다. '슈바르츠 Schwarz'는 독일어로 '검정색', '파러 Fahrer'는 '차에 탄 사람'을 의미한다. 독일어의 '슈바르츠 Schwarz'와, '암표', '암시장','암거래',... 할 때, 우리말의 '암(暗)'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어쨌든,버스마다, 전철마다, <'슈바르츠파러 Schwarzfahrer'는 40유로의 벌금형을 받는다'>는 공고문이 붙어 있음에도, 줄지 않는 무임승차로 인해 시에서 특단으로 새로운 전략 하나를 들고 나온 것이, 'Vorne einsteigen - fair dabei sein(앞문으로 타라, 당당하게!) ' 라는 모토로, 올해 8월 1일부터 승객으로 하여금 앞문으로 타서 기사에게 표를 확인하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버스에만 적용되며, 시내 한복판을 오가는 복잡한 전철에는 적용할래야 할 수도 없는 법이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유모차나 캐리어, 자전거 등등을 가지고 타는 승객의 경우에는 일단 아무 문으로나 탈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특권은 거기까지 일 뿐, 가지고 탄 유모차나 자전거를 잘 세워놓고는 앞쪽으로 가서 예외없이 기사의 확인을 받아야 차가 출발한다.

이제껏 친절하던 기사아저씨가
물정을 모르고 뒷문으로 탄 사람들을 향해,"앞으로 나와서 표를 보여주세요!"
하고 까탈을 부리며 출발을 지연하는 경우는 실효가 된지 석달이 되어가도록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내가 사는 도시의 예일 뿐, 독일 전역의 예는 아니지만, 이러한 방법이 실효를 거둘 경우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가뭄에 콩 나듯이 있다는 그 '표 검사'로 시 교통당국에서 벌어들이는 돈도 제법 솔솔하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몰려드는 관광객들 중 '안 걸린 슈바르츠파러 Schwarzfahrer'만 있겠는가.. '걸려서 벌금을 내야하는 슈바르츠파러 Schwarzfahrer' 수도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거의 2년 만에 대중교통요금을 3.74% 인상 시키면서, '슈바르츠파러 Schwarzfahrer'로 인한 부당한 요금을 시민들에게 부과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새로이 시작된 '표 검사'는 묵묵한 독일사람들의 특성상 일단 별 탈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와 함께 버스기사들에게 부여된 과한 노동, 그로 인한 불협화음들, 예를 들어, 기사가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표 검사까지 해야 하는...그걸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어쩐지 이 곳의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단 느낌이 든다. 모범기사들 대상으로 독일에 연수를 보내주던 프로그램이 아직도 우리 나라에 아직도 있나 모르겠다.

'선진국의 버스기사들'을 배우려 머나먼 동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이들의 친절함을 배워가는데, 어찌 이들은 반대로 기사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 시민들과 어우러지지 못 하게 하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지치도록 만드는 걸까..

실제로 전에 내가 독일에 있던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이 곳의 버스기사들이 최근 들어 더 불친절하고 더 게을러 진 게 사실이다. 10년 전엔, 백미러로 커다란 짐을 가지고 타는 승객을 보면 기사가 내려서 직접 짐 싣는 걸 도와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턱도 없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어느 정류장에 도착하자,그 곳에 휠체어에 탄 사람이 있었다. 버스가 오자, 사람들은 다들 
'Vorne einsteigen - fair dabei sein(앞문으로 타라, 당당하게!')' 라는 모토대로, 앞문으로, 앞문으로 몰려들었다. 뒷쪽 문 앞에 휠체어를 고정시킨 채 그는 버스에 오르지도 못 하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그의 손이 닿지 않아
밖에서 여는 버튼도 못 누르고 있는 상황인데다, 비가 내려 버스 안 유리창에 김이 서려 밖이 잘 보이지 않는 관계로 버스 안의 사람들도 대부분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 하는 듯 했다.

그대로 운전기사가 지나쳐 가버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날 즈음에, 앞문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다 타고 나서 기사가 내리더니 그를 버스에 올려주었다. 완전 '짐'처럼...투덜거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는 독일 사람들의 특성상,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 유모차나 휠체어 밀어주는 것 정도는 대부분이 스스럼없이 도와준다. 하지만 앞으로 타라는데, 혼자 뒤쪽에 서서 남을 도와주고 있기란 말처럼 쉬운가..

등하교 시간에는 더더욱 사태가 심각하다. 독일 버스가 서울 시내에 몇 대 돌아다니는 걸 본 사람이라면 버스의 길이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버스  한 대에 문이 3 - 4개 달려 있다. 그 문을 두고 앞문으로만 몰리니,정류장마다 붙어 있는 시간표대로 시간을 지키려면 운전수도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할 것이다. 아이들의 등하교를 함께 하기에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내달리는 기사들을 나는 아침마다 본다. 

심지어 한 정류장에서는 승객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차가 출발한 일도 있었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리려는 순간 문이 열려있던 채로 '부르릉' 하며 버스가 출발했다. 다행이도 그 승객이 젊은 남자여서 뛰어내렸어도 다치진 않았지만... 운전기사는 뒤쪽의 상황을 아는 지 모르는지 문이 그대로 열린 채로 다음 정류장까지 내달렸다. 버스가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승객은 액션영화라도 연출해야만 하는 건가... 이 어이없는 '표 검사'가 일회성으로 이 도시로만 끝나길, 아니, 그저 '실효성 없음'으로 무산되 버리길 바래 마지 않는다.

'여행의 천국'이라는 유럽같은 땅도 지구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
슈바르츠파러 Schwarzfahrer'로 몸살을 앓는다 할지라도 
'앞문으로 안 타고도 당당한' 수많은 여행자가 있다는 것을,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꿈꾼 그 누군가는 꼭 알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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