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하면 얼른 영덕대게가 떠오른다. 그러나 사실 영덕보다는 포항 구룡포가 오히려 대게의 주산지다. 하지만 영덕에 있던 게가 잠시 아랫마을 포항에 내려오면 그게 또 포항대게가 되는 것이니, 영덕대게든 포항대게든 대게들이 행정구역을 정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알고 보면 그 녀석이 그 녀석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포항 구룡포를 지날 때면 그때마다 바다에서 풍기는 짭조름한 갯내음만큼이나 길 따라 늘어선 대게집들도 강렬한 인상을 풍기곤 했었다. 마침 점심 시간이기도 해서 이번에야말로 대게를 먹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대게집 수족관 앞으로 다가갔다. 구경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장갑을 낀 채 냉큼 나온 사장님이 바로 한 마리 집어올릴 태세로 말을 붙이셨다.
싱싱한 대게들이 수족관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그 중 한 마리 고르기만 하면 바로 포항대게 맛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사장님 말씀이, 포항대게는 현재 금어기라 아예 찾아볼 수 없고, 홍게도 대게와 마찬가지로, 잠시 금어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결국 수족관을 메우고 있는 녀석들은 러시아산이었던 것...
가격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산 박달대게 1킬로그램에 10만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포항대게든 러시아산 박달대게든 안 먹어본 티를 너무 팍팍 낸 나머지 제 가격 주고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안 먹어본 티는 그렇다 치고, 금어기인 줄도 모르고 온 뜨네기 길손이었던지라...
바둥바둥거리는 러시아산 박달대게... 먼저는 다른 놈을 고르시더니, 놓아주고 요놈으로 다시 고르셨다.
'일부러 포항 대게를 먹으려고 온 건데... '
하며 아쉬워하는 소리를 듣더니, 살이 안 찼으면 환불도 해주신다며 수족관에서 제일 실한 녀석으로 골라주신 것 같다.
방금까지 바둥거리던 녀석이 뒤집어 놓으니 눈까지 감는다. 햇살 때문에 눈이라도 부신 듯한 자태란..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잘 쪄진, 살이 꽉 찬 박달대게까지 곁들여지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살을 거의 발라먹을 때쯤 밥이든 볶음밥이든 선택해 주문하면, 개인 취향에 따라 게딱지에 직접 맨밥을 비벼 먹거나 볶아 먹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맛있게 먹고 가게를 나섰으니 그래도 그만하면 됐다.
현재 국산 대게는 해마다 눈에 띄게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무차별한 남획의 결과다. 그런 이유로 금어기를 정해 철마다 특별 단속을 벌이고는 있지만 생계가 달려 있다 보니 불법 포획이 쉽게 근절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이쪽 사람들이 맘 놓고 흔히 먹던 게 대게였다는데, 언제부턴가 씨가 말라 웬만해선 맛 볼 수 없는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니 어쩐지 안쓰러운 감이 든다. 먹을 만큼만 잡고, 금어기만이라도 무차별 포획은 근절되어야 하는 게 맞다. 먹을 때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는 일 또한 자기 몸을 내어준 대게에게 감사하는 길이 아닐까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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