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품은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그들의 정신세계와 삶의 태도에 비춰 바라보게 한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 맞지 않는 세계에 맞선 이들의 이야기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https://blog.kakaocdn.net/dn/bBLKHU/btsLFzuAeX2/PsPxbMyWK4Q2GNm6vcj4i1/img.jpg)
<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은 저자 진은영이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은 독일 시인 슈나이더의 "세계는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계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에 살면서도, 그 세계와 용감하게 맞서며 나아가는 인물들을 작품을 통해 제시한 작가들을 소개한 에세이라고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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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한나 아렌트, 마르틴 하이데거, 잉게보르크 바하만, 알베르 카뮈,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잘 알려진 굵직한 서양 작가들은 물론, 월북 이력 때문에 국내에서 출판금지를 당했다가 1988년에야 비로소 해금이 된 백석,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제국주의에 휩쓸렸다가 다시 서양문화에 휩쓸리며 혼돈의 시대를 거쳐온 일본 작가 이바라기 노리코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세련된 문장들을 통해 작가나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이 책이 잘 연결해 줘서, 이미 알고 있든 아직 접하지 못했든 작가나 그의 작품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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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성별, 인종, 계급 등의 사회 문화적 규정들 속에 던져진다. 사회는 그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며 늘 우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대기 중이다. 규정 하나를 잘 지켜도 다른 규정들로 인한 소송들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동안 사회적 '정상상태'에 있을 것을 명하는 법 앞에서 계속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를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완전한 무죄방면은 불가능하다. - 프란트 카프카 편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에서 주인공 K는 어느 날 다짜고짜 체포된다. 카프카의 다른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해버린 사건처럼.
카프카의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비록 그때와 시대는 바뀌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언제라도 어떤 규정에 의해 제동이 가해질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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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은 한없이 어둡다. 그런 세상에서 사랑은 벼락처럼 아주 잠시동안 번쩍이며 어둠을 밝힌다. 장미꽃처럼 붉고 짧은 빛 속에서 바흐만은 꽃들을 몽환적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피어난 꽃들 아래 환하게 불 밝혀진 역사의 과오라는 가시들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나는 장미의 벼락 속에서 가시에 찔리며 그를 포옹할 것이다. 벼락 뒤에 따르는 천둥같이, 사랑의 끝나지 않을 비명이 이제 우리를 뒤따를 거다.'라고 그녀가 독백하는 것만 같다. - 잉게보르크 바하만 편
독일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을 사랑했다. 파울 첼란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시를 썼다.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수용소를 거쳐야만 했고 가족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괴로움과 절망으로 고통받는 파울 첼란을 보며 그녀는 자신의 일그러진 조국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격망상에 시달리다 결국 센강에 몸을 던지고 만 불행했던 연인의 가시마저 그녀는 품어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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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2
안나의 시는 우리를 그녀의 생으로 직진하게 만든다. 집요하게 구애했던 동료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결혼했지만, 이 마음 약한 결정은 그녀의 삶에 재앙이 되었다. 그는 갓난 아들의 울음소리를 성가시게 느꼈고 아내가 내어온 홍차를 싫어했으며 무엇보다 동료이기도 했던 아내의 예민함과 자기주장을 못 견뎠다... 시인은 고통이 우리를 영원히 지배하는 황제라고 느낀다. 자신을 '추위 속에서 손을 데울 장갑 한 짝마저 잃어버린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마지막 만남의 노래>와 같은 시에서 시인은 왼손의 장갑을 벗어 오른손에 꼈다고 노래한다.. 꼭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한 짝을 분실했으니, 이제 남은 장갑 한 짝을 계속 바꿔 끼며 얼어붙은 두 손을 데워보려는 것처럼 분주히 살아갔다. 안나는 그런 식이었다. - 삶도, 시도 중단할 수 없었던 러시아 국민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편
잃어버린 한 짝의 장갑에 연연하기보다, 남아 있는 한 짝의 장갑을 양손에 번갈아 끼워가며 온기를 모으고자 했던 시인. 자기 아이의 울음소리를 싫어하고 자신이 준비한 차를 싫어했던 구밀료프와 헤어지고 그녀는 다른 사랑을 찾는다. 그 후 구밀료프는 러시아 혁명기에 미국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반혁명분자로 몰려 처형당했고, 어린아이였던 아들은 자라면서 반역자의 아들로 낙인찍힌 채 종국에는 체포와 투옥의 고통을 치르며 절망스러운 인생을 살았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삶도 시에 대한 열정도 놓치지 않았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그녀의 삶의 한 자락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수많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삽입되어 있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읽기도 편하고 읽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에 환한 빛 한 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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