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시리즈 세 번째 작품 <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는 이전의 두 작품 < 가면산장 살인사건 >, < 하쿠바 산장 살인 사건 >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공간에서의 사건의 추이를 다룬다.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형식의 소설로, 범인은 이들 속에 있는데..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시리즈 3탄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ある閉ざされた雪の山荘で)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 제인 2023.07.18
히가시노 게이고의 산장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 독자를 많이 가진 일본 작가다. 개인적으로 그의 책에 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다수의 그의 초중기 작품들에 대한 경외감에서다. 이 작품 <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 ある閉ざされた雪の山荘で) > 또한 이미 1992년에 출간된 것인데, 2023년 7월에 재간되었다.
<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와 함께, 그의 산장 시리즈 두 개가 더 있다. < 가면산장 살인사건 (仮面山荘殺人事件) >과 < 하쿠바 산장 살인 사건 (白馬山荘殺人事件) >.
세 작품 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들로, < 가면산장 살인사건 >은 1990년 출간되었다가 2014년에, < 하쿠바 산장 살인 사건 >은 원래 1986년 <백마산장 살인 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발간되었다가 2008년과 2020년에 책 제목을 바꾸어 세상에 다시 나왔다.
이렇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산장 시리즈들이 재출간한 작품들이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감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랜 불황과 침체를 겪어서일까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특성 때문일까, 배경이 일본이고 외딴 산장이라고 하는 설정이 30년 전후의 시간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 나온 소설이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산장 시리즈들이 조금은 식상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처음 발간될 당시로서는 충분히 파격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외딴 산장에서의 살인 사건, 고립된 공간에 갇힌 등장인물들이 겪는 불안과 갈등을 클로즈드 서클 형식으로 구성함으로써, 벗어날 수 없는 공간에서의 사건과 추리를 다룬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우리와 친숙한 배경으로 바꿔 보는 듯한 감을 맛보게도 된다.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아직 공기 중에 한기가 남아 있는 산속의 4월이다. 계절이 봄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인물들에게는 지금이 한겨울이고 폭설이 내려 꼼짝 못 한 채 외딴 산장에서 갇혀 있는 상황이다.
그 배경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등장인물 모두는 극단 '수호'에서 새로 공연할 연극에 이제 막 캐스팅 된 배우들인데, 연출가가 이런 상황을 설정해두고 등장인물들의 연기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가가 원하는 것은 메소드 연기인가, 배경에 대한 설정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설정되지 않은 상태다.
막상 캐스팅은 되었는데, 연기할 작품이 추리극이라는 것 이외에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모르고 있는 배우들로서는 어렵사리 통과한 오디션때문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연출가가 폭설 때문에 산장에 갇힌 인물들을 연기하라는 주문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 전화를 사용해서도 안 되고, 외부인과의 접촉도 금지다. 이를 어기고 중도에 포기하면 오디션 합격이 취소된다.
산장에는 다섯 종류의 추리소설이 사람 수 만큼 7권씩 꽂혀 있다. 이 또한 연출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기에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하며 책에 집중하는 배우들. 책들은 모두 유명한 추리소설.
마침내 배우 하나가 사라진다. 사건이 실제인가 연기인가, 등장인물들마저 심리적으로 동요한다. 메소드 연기만 펼치면 될 것인가.. 실제인지 가상인지 사건을 파헤칠 것인가.. 그때 또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소설은 3인칭으로 서술되지만 중간 중간에 일인칭으로 바뀌는 시점이 있다. 등장인물 7인방 중에 구가 가즈유키라는 인물의 독백 부분이다. 사건을 관찰하면서 독백형태로 그 만의 추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 소설에 비해 확실히 싱겁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 이를 테면 < 백야행 (1999) >, < 방황하는 칼날 (2004 / 2008) >, < 천공의 벌 (1995 / 2010) > 같은 그의 오래된 작품과 비교해 봐도 매우 싱겁다. 그래도 다른 산장 시리즈 중에 그나마 <가면 산장 살인사건 >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을 했는데, 2014년 재출간된 <가면산장 살인사건>에 환호했던 독자들도 많으니, 이것은 철저히 나만의 기준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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