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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범행도구와 사건의 경과에 맞춰진 미스터리

by 비르케 2025.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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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 가연물 >은 이른바 형사물이다. 한 형사의 눈으로 추적해 가는 사건의 경과는, 사건 위주의 서술이라기보다 결과로부터의 추론 위주다. 짜임새 있고 독특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스토리 위주 스릴 넘치는 추리물을 기대했다면 지루할 수도.

가연물, 결론 보다는 경과에 맞춰진 특별한 미스터리

소설 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두 번째다. 지난번 읽었던 I의 비극에서는, 시에서 추진하는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한 데 묶였다.

이 소설 < 가연물 > 또한 '가쓰라'라는 이름의 형사가 맡은 다섯 개의 사건을 옴니버스 형태의 에피소드로 담았다. 
 
가연물.. 가연성 물질을 뜻한다. 주택가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이어진다. 큰 불은 아니지만 누군가 일반 쓰레기에 일부러 불을 붙였다. 범인이 누군인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헤쳐가는 형사들.
 
 <가연물> 외에도, <낭떠러지 밑>, <졸음>, <목숨 빚>, <진짜인가>, 이렇게 다섯 개의 단편이 하나로 묶여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낭떠러지 밑>에서는 피해자가 스키보드를 타러 네 명의 지인들과 함께 설산에 올랐다가 고립된 채 사망한다. 그러나 정규 코스에서 벗어나 백컨트리(backcountry)를 제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피해자 본인이었다. 자유 활강 끝에 사고를 맞은 것이다. 
 
 

저 멀리 위쪽에 쌓인 눈이 차양처럼 튀어나와 있고 그 끝에 흉악하게 생긴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가쓰라는 가까이 있던 부하를 불러 머리 위를 가리켰다.

 
뭔가 끝이 뾰족한 걸로 찔린 듯한 피해자의 깊은 상처. 가쓰라 형사는 주변 정황을 살피면서 벼랑 끝에 매달린 고드름에 주목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일순간 고드름이 범행 도구로 쓰인 다른 소설이 떠올랐다. 이 소설 또한 비슷한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감식 결과 피해자의 상처 내부에 응집된 혈액이 발견된다. 그것이 피해자의 것이라면 독극물로 인한 혈액응고일 수 있지만, 의아한 점은 다른 혈액형의 피가 피해자 몸속에 흘러들어와 있는 상황. 고드름을 이용했다면 타인의 혈액이 흘러들어 갔을 리 없다.
 
 

흉기는 각이 있는 곧은 막대기 형태이면서도 끝이 뾰족하다. 최소한 단면이 둥글지는 않으니 고드름은 절대 아니다. 이로써 범행도구가 무엇인지 더욱 아리송해지는 상황.

사건의 정황만 따라가기 보다 이처럼 범행을 둘러싼 진실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다.
 
이런 게 요네자와 호노부 소설의 묘미다. 달리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관왕에 뽑힌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다섯 개의 짧은 단편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목숨 빚>이었다. 죽음을 앞에 둔 위급상황에서 자신과 자신의 딸을 구해준 은인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이 보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시나리오를 완성해보려고 할 수는 있겠구나.. 그래도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지.. 하며 읽었다.
 
또 <졸음>에서도 잠이 부족해 실수하는 인간들의 단상을 보며 그런 부분을 소재로 택할 수 있음에 놀랐다. 졸음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면서도 때로는 그 책임이 막중해지는 게 사실이다. 일례로 졸음운전이랄지.
 
흥미나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구성과 필력을 보면서 참 대단한 작가가 맞다는 생각을 했다. < I의 비극 >을 통해 그 누구도 이야기화하지 못한 주제들을 너무도 생생하고 과감하게 보여줬다 생각한 요네자와 호노부인데, 이번 <가연물>을 통해서도 그의 저력을 본다. 
 

  ◀ 요네자와 호노부 다른 작품 리뷰 ▶ 

I의 비극 - 요네자와 호노부, 지방소멸의 비극

모두가 떠난 지방의 어느 마을, 사라져 가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해법이란 무엇일까. 요네자와 호노부의 'I의 비극'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어느 시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이야기

birk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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