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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비극 - 요네자와 호노부, 지방소멸의 비극

by 비르케 2024.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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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지방의 어느 마을, 사라져 가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해법이란 무엇일까. 요네자와 호노부의 'I의 비극'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어느 시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I의 비극 - 요네자와 호노부, 지방소멸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_I의 비극

제목에 있는 'I'란 'I턴'을 의미한다. I턴은 도시 사람이 농촌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모두가 떠나고 소멸해 가는 시골 마을이 있는가 하면, 마음속으로는 전원생활을 꿈꾸면서도 선뜻 실천하지 못하는 도시민들도 있다. 이들은 전원생활을 꿈꾸면서도 정작 어디에 가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이 퇴직 후 U턴을 해서 맘 편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들은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함께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 'I의 비극'은 100세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도입부의 느낌이 매우 을씨년스럽다. '날숨도 얼어붙을 듯한 새벽'이라든가, '다들 장례 절차에는 익숙했다',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그 죽음이 '계기'였다' 등의 표현들이 지방소멸이나 고령화 등의 이미지와 겹치니 음산함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100세 할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 전에는 미처 상상도 못 했던 지방소멸의 현상들이 이어지지 시작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나고... 미노이 시(원래의 마을이름을 버리고 나중에 붙여진 이름)는 그렇게 잡초가 우거지고 가로등 없이 어둡고 적막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00세 할머니의 죽음이 있던 날, 눈이 내렸다는 이유로 운구차의 도착이 늦어짐을 '예상밖의 일'이라 표현했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외딴 지역으로 이어지는 길의 제설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모두가 떠나버린 터전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구역들을 한 데 묶어 새로운 행정구역이 정해지지만, 그곳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현실과는 먼 정책들이 생겨난다. 소멸지역에 외부 사람들을 불러들여 활기를 되찾겠다는 그들의 일념과는 달리, 현실은 입주민이 심지어 300미터의 거리를 직접 제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버려진 빈 집을 시에서 빌려 수리한 다음, 임대를 놓고 임료를 지원해주면서 외부에서 사람들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실무는 '소생과'라고 불리는 시청 분과에서 맡는다. 비좁은 소생과 사무실에는 삐걱거리는 의자들이 놓이고 난방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다. 애초에 지방소멸을 우려해야만 할 정도의 지자체에서 이런 사업에 쓰일 사업비가 넉넉할 리 없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지원금을 받고 소멸지역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좋은 기회다. 들어올 때와 같이 나갈 때도 맘에 안 들면 가볍게 마음을 접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내용상 그런 경우에 이주비까지 지원이 되고 있다.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나갈 때 이주비를 준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칠 뿐.

 

 

시장이 그린 커다란 그림은 점점 이상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시장과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부시장은 그저 상사의 결정이라니 문제가 없겠거니 일축하며 그다지 나서기도 싫도, 반대하기도 싫고, 신경 쓰기도 싫고... 

 

미노이시에 입주한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취미나 시골살이의 호젓함, 때로는 헛된 야망만을 펼쳐놓을 뿐,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농촌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꿈꾼다. 

 

 

차로 드나들기도 쉽지 않은 지형,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구급차가 오는 데 40분 이상이 소요되는 지역에, 정책적으로 돈을 쏟아붓는다고 사람들이 머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두가 안된다고 말해도 헛된 공약을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말릴 수가 없다. 

 

끝부분에 반전은 어찌보면 오히려 이상적이라 생각된다. 지방소멸에 대한 대책들은 여전히 실제로 진행 중이지만, 이 책에서 보는 폐단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어떤 정책으로도 막기 힘든 게 소멸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는 미스터리를 써오던 작가인데, 이 소설은 미스터리 중에서도 독특함, 참신한 면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지방소멸을 일찍 겪은 일본이라서 이런 주제들이 낯설지는 않겠지만, 인구소멸, 노령화 등의 사회적 문제에 미스터리가 가미되니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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