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장점 중 하나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그 익명성으로 인해 현실은 이웃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아무에게도 침해받고 싶지 않는 삶이지만 정작 위험이 급습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도 멀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피터 로벤하임이 동네의 진짜 이웃 찾기 프로젝트에 나선 이유다.
나의 도움이 오는 곳 - 우리 동네 진짜 이웃 찾기 프로젝트
의사, 변호사를 비롯한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여사는 상류층 마을 산드링험의 어느 의사 부부 집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남편이 아내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 사건이다. 아내였던 여성의 이름은 '르난'이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서로 데면데면하던 이웃들이 서로에게 한발 다가간다. 부모를 잃은 르난의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이웃, 르난의 친정 식구들을 머물게 해 준 또 다른 이웃, 식사를 챙겨주며 자원봉사를 해준 이웃까지, 그들도 정작 이웃에게 굳이 벽을 쌓을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어쩌다 서로 마음을 열게 되었는데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 마음의 빗장을 채우는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저자가 '진짜 이웃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웃의 집을 찾아 하룻밤을 지새며 상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게 프로젝트의 내용이다.
은퇴한 뒤 동네에 친한 사람이 없다 보니 아내가 떠나고 혼자 살고 있는 노인,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아 이웃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던 젊은 부부, 성처럼 큰 집에 살지만 실은 이혼 후 암에 걸려 남들이 자신의 삶을 동정하는 것이 싫어 조용히 지내는 여성, 40년을 한결같이 이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 또 한 여성 등을 저자는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다.
이웃이 싫고 무관심했다기보다 서로를 알아갈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가장 힘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이런 이웃들을 두고, 르난은 불안에 떨면서도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친구에게만 의지했었다. 만일에 이웃과의 교류가 있었더라면 친구에게 도움요청을 하다가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 책에는 산드링험로드를 40년 동안 한결같이 거니는 그레이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 피터 로벤하임은 이 동네의 집을 부모님으로부터 상속받았는데, 어렸을때부터 살던 동네라서 날마다 자신의 동네를 걸어 지나던 여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90살이 다 된 그녀가 여전히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레이스를 통해 예전 산드링험과 달라진 산드링험에 대해 듣게 된다. 그레이스는 예전 산드링험은 이웃끼리 서로 오가던 정이 넘치는 곳이었는데, 상류층 사람들이 마을에 자리를 잡고나서는 그들이 퇴근할 때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 다니지 않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이웃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피터 로벤하임의 '나의 도움이 오는 곳'은 오래전 읽었던 책인데, 이웃과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던 책이라서 도서관에 간 김에 빌려왔다. 도서관에서 책 검색을 하는데, '보존서고'라고 뜨고 직원에게 문의하라고 되어 있었다. 보존서고는 오래되어 손상을 막거나 보존할 가치가 있는 도서를 따로 두는 곳'이라 한다. 보존서고에서 직원이 직접 가져다주는 책이다.
이 책 '나의 도움이 오는 곳'의 경우는 아직 절판도 아니고, 아마도 찾는 사람은 간혹 있는데 많이 비치할 필요는 없어서 소량만 구매해 대여하는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동화를 제외하고는 이웃에 대한 책들이 부족하긴 하다.
편의점에 가도, 택시를 타도 말 거는 게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군다나 전염병 시국이 되고 나서는 사람이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일이 일상이다. 시대가 바뀌니 사람 살아가는 모습도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면 좋을 이웃들을 많이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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