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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에 탁주 한 모금이 생각나는 시, "주막에서"

by 비르케 202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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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주막은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내기에 좋은 장소다.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밥도 내어주고 잠자리도 내어주고, 술도, 때로는 사랑도 내어주던 곳이다. 김용호 시인의 시에서 주막은 서로의 술잔을 통해 타인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사발에 탁주 한 모금이 생각나는 시, "주막에서"

 

사극마다 거의 등장하는 씬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주막에 막 들어서면서 주모에게 국밥이나 술을 달라고 외치는 씬이다. 과거를 보러 산을 넘어 한양을 향하는 선비들, 전국 장을 떠도는 장돌뱅이들, 오랜만에 만난 이웃 친지와 술 한 잔 하러 들른 동네 사람들까지.

 

 

 

사극에 주막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의 입을 통해 극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주저리주저리 나오기 때문이다. 굳이 세세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그들은 가장 일상적인 화법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낸다. 주모가 내온 상에서 술병을 집어 들어 상대의 사발에 따르며 이러쿵저러쿵 극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알고 보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한국의 옛날 집 모습
외암리 민속마을 어느 초가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구수한 입담으로 사극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그들은, 사극이 아닌 시에서는 굳이 입을 열 필요가 없다.

 

김용호의 시, "주막에서"는 그들의 입술이 닿았을 사발이 돌고 돌아 화자의 입술에 닿고, 그 사발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향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족하다. 그것만으로 타인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 한 편이 완성된다.

 

막걸리 한 잔에 녹여낼법한 사연들은 하나하나 모두 슬픈 노정으로 비쳐진다. 마음에 돌 뭉치 하나 가지고 왔다가 살짝 내려놓고 다시 가없는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화자의 눈에는, 이 빠진 낡은 사발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유일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맵고도 쓴 시간은 마치 물과 같이 흘러가고,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한 사발에 인생을 안주 삼는다.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이다. 

 

 

 

 

 

김용호의 시, " 주막에서 "
1956년 <날개>에 실림

김용호의 시 " 주막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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