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울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니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 당연한 듯 여겨지는 것들이 실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때로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수 있음에 공감하게 되는 책, '우울을 지나는 법'을 읽는다.
우울을 지나는 법 - 매트 헤이그
이 책을 고른 날, 특별히 우울했던 것은 아니다. '우울'이라는 현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궁금해서 책을 꺼내 들었다. 책 속에는 애써 부인하고 싶은 내 속에 잠재된 어느 부분도 보였다. 현대인이라면 없을 리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우울이라는 관점에서 보니 굳이 부인하려는 게 더 억지스럽단 느낌마저 들었다.
이 책의 저자 매트 헤이그는 20대 젊은 날에 극단적인 우울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냈다. 몸을 움직이기 조차 어려운 불안과 공포, 슬픔과 두려움, 공황과 발작에 거의 매일매일 시달려야 했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과, 그 감정에서 기인한 불안으로 인해 어쩔 줄 모르고 홀로 자주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책 전반에 걸쳐 '우울'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 떠올리기보다, 우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공황이나 불안 정도로 해석하는 편이 이 책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된다.
남들 편하게 사는 일상이 그에게만큼은 너무도 힘겨웠던 나머지, 어느 날 그는 절벽 끝에 서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울은 그의 발목을 잡는다. 뛰어내렸는데 죽지 않게 되면 어떡하나, 마비가 되어 어딘가에 영원히 끼어 있으면 어떡하나.. 행복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저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바랬을 뿐인데, 죽지 못하고 고통만 더 늘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에게는 따뜻한 가족과 다정한 연인이 있었기에 그는 다시 집으로 되돌아온다.
우울이라는 현상이 심각한 이유는 환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웬만한 병은 약으로 다스리거나 수술을 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거할 수 있지만, 우울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치부될 때가 많고 근본적인 치유도 어렵다. 남성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태생적으로 우울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에 결국 끝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여성들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상대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아무도 위에서 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만큼은 부지불식간에 이런 표현들을 불쑥 던지는 경우가 있다. 질병으로 보기보다 우울의 주체가 해결하지 못 한 마음의 문제로 보거나 간단한 문제인데 지나치게 예민하게 바라보는 거라고 여기는 등, 마음 속 우울(공황이나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결핵이라며, 괜찮아, 죽고 그러는 병은 아니잖아."
라고는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는 말한다.
"우울증이라며, 괜찮아, 죽고 그러는 병은 아니잖아."
"알지, 결장암 걸리면 힘들겠지. 그래도 다른 환자들처럼 살려고 애써야지."
라고 어줍짢은 조언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는 말한다.
"우울증이라니 힘들겠군,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고 애써야지."
"그래, 너 다리에 불 붙은 거 보여. 그렇다고 불평만 하면 뭐가 달라지니?"
이처럼 무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는 말한다.
"그래, 너 우울증 있는 거 알아, 그런데 계속 불평만 하면 뭐가 달라지니?"
"알았어, 알았다고, 낙하산이 고장 났나 보네, 그래도 힘내."
이런 말은 하지 않지만 이렇게는 말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마음에 문제가 있는 거잖아, 그래도 힘내."
저자는 어느 날 폭발할 것만 같은 불안으로 울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방에 들어온다. 울고 있는 아들을 가만히 껴안으며 아버지도 눈물을 흘린다. 잠시 후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울어도 된다, 애야.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차려야지.'라는 말이 마음에 콱 걸리고 만다. 우울증은 그렇다. 결국 아버지가 듣고 싶을 말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그럴게요 아버지. 노력할게요."
세월이 흘러 저자는 20대에 극에 달했던 우울로부터 한발 멀어져 있다. 우울의 근원을 찾아 어린 시절을 돌이켜 정리해 보았고, 그 속에서 일찍이 불안의 싹이 자라고 있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글로 솔직히 쓰기 시작한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만 힘든 우울을 껴안고 있다 생각했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책은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매트 헤이그가 말하는 우울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무쾌감증(Anhedonia)이다. 어떤 일을 접해도 즐겁지가 않은 증상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에 무감동하고, 다들 웃고 있는 상황에서도 홀로 냉담하다. 때로 정신운동 지연으로 행동이나 말이 느려지기도 한다. 불안정한 기분을 느끼고 자주 울기도 하는 등 우울증을 알아차릴 수 있는 증거들에 대해서도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누군가 우울증의 증상을 보인다면 아마도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논픽션이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저자 본인의 이야기다. 집 앞 가게에도 제대로 갈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공황과 우울에 사로잡혔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우울을 질병으로 받아들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책에 담겨 있다. 사실 그에게서 우울이라는 대상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도사리고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다.
매트 헤이그의 < 우울을 지나는 법 >, 삶이 불안하고 때로 심한 공포로 다가온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우선은 그저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던 내면의 우울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것은 감기만한 우울일 수 있고, 중증의 우울일 수 있다. 우울의 근원을 찾아 과거를 돌아보게 될 수도 있고, 매트 헤이그가 했던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만 우울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 예민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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