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장 그르니에의 '섬' 리뉴얼 판이 출간되었다. 이 에세이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역자(옮긴이)의 제안에 의해 무려 40년 만에,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의 감동을 잊지 못해 오래된 번역본을 아직 소장한 이들도 많을 거라 생각된다.
장 그르니에 - '섬', 달의 뒷면, 또 다른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
장 그르니에의 '섬'을 구매해 처음 읽었던 때, 그때는 세기가 바뀌기도 전이었다. 중간에 리커버도 되었고, 또 세월이 흘러 그로부터 40년 만에 리뉴얼판이 나왔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이라는 역자의 취지에 공감이 가는 게,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다시 읽어보니 역시나 그 시대 문체들이 가독성을 많이 흐린다.
내게 있는 '섬'은 1993년 7월 10일 초판 10쇄 본이다. 처음 이 책이 나온 1980년에서 13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사실 외국 번역본은 세월이 지나면 국내 작가의 책들보다 가독성이 더 심하게 떨어진다. 번역 과정에서의 시대에 뒤떨어진 문체도 그렇지만, 번역 자체가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많다. 현학적으로 뒤틀어놓은 언어들은 특히나 이런 에세이 형식의 글에 상당한 경직을 던져준다. 그럼에도 장 그르니에의 '섬'을 비롯한 책 몇 권은 버리지 않고 그대로 서가에 남겨두었다. 그만큼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알제에서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내가 그 책에서 받은 충격, 그 책이 내게, 그리고 나의 많은 친구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오직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 이외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알베르 카뮈의 서문으로 시작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흥분과 감동이 알베르 카뮈의 서문을 통해 그대로 느껴진다. 서문에서 카뮈는 길거리에서 이 책을 열어본 후 몇 줄 읽다가 다시 고이 접은 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이 책을 읽었던 때의 경험을 되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초판본에는 아예 카뮈의 서문 중 한 부분을 표지에 박아 놓았다.
장 그르니에가 1930년 프랑스 알제의 한 고교에 철학교사로 부임했을 때 카뮈는 그 학교의 졸업반이었다. 그렇게 장 그르니에와 카뮈는 사제지간으로 처음 연을 맺었다. 그 후 카뮈가 스승의 글을 읽게 되었고, 그로부터 이 유명한 서문을 남기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카뮈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 글 속에는 카뮈 본인이 처음 이 글을 접했을 때의 희열도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그런 희열을 처음 경험할 그 누군가가 부럽다는 말로 이 책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했다. 아마도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역자도 이 책을 1980년 당시 국내에 소개했을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 중에서 '케르겔렌 군도'의 한 부분이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곳에 도착해, 이제까지 자신을 대변했던 수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감추어진 삶을 살고 싶은 저자의 소망이 담겨 있다. 비밀스러운 삶을 꿈꾸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긴 여행길에 오르거나, '떠다니는 삶'을 즐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토록 감추어진 삶을 갈구했던 장 그르니에가 왜 하필 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귀족층이나 유명인사들 사이에는 사교계라는 게 있었으니,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아예 단절된 삶을 꿈꾸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섬을 떠올린 게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일상을 탈출한 긴 여행 정도라면 장 그르니에의 비밀스러운 삶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뒤에 마침 해법이 될만한 내용이 이어졌다. 한달이나 일 년 정도의 여행을 통해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단순히 일상의 탈출을 위해 잠시 떠나는 여행은 비밀스러운 삶을 통해 또 다른 삶의 이면을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듯하다.
낯선 곳에서의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지닌다. 그런 나머지, 어떤 위대한 풍경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끌림을 통해 삶을 포기하게까지 한다. 아니 어쩌면 삶을 포기하기 위해 그 엄청난 끌림에 다가가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인지는 알겠는데, 번역이 ㅠㅠ... '규모'라는 단어가 특히나..)
이제껏 쌓아왔던 인생의 남다른 이력을 다 던져버리고 남루한 밑바닥에서부터 삶의 다른 부분을 찾고자 하는 일, 그것은 눈에 보이는 달의 모습이 아닌, 달의 가려진 부분을 찾는 일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위안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달의 뒷면과 같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직함을 감추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도 좌절하지 않을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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