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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독일대학을 주도하는 새 바람, 배철로(Bachelor)

by 비르케 200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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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일 대학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나이 든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캠퍼스 안의 나이든 이가 선생인지 학생인지는 아무도 판가름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의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유학이라는 새롭고 과감한 결정을 하고 낯선 눈으로 조마조마 독일에 들어온 학생들 중에는, 생각보다 자신의 또래가 많음에 새삼 놀라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도 있었던 곳이 독일의 대학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학문을 하는 데 있어 나이가 제약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렇게 과거에 나이 든 학생들이 많았던 이유 중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두 가지 이유만 거론해 보겠습니다.

1. 먼저, 가장 큰 이유는 학제에 있었습니다.
이전에 독일 대학을 졸업하고 받을 수 있는 학위는 '마기스터(학과에 따라 졸업시 부여되는 명칭은 몇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내용이 분산되니 제 전공과 관련된 '마기스터'의 칭호만 쓰겠습니다)'였습니다. 졸업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과정을 감안하면 우리의 '석사' 정도에 해당하는 학위입니다.  
이 마기스터 과정을 목표로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5년이 넘어가고, 외국인들의 경우에는 처음 어학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합쳐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해야 타이틀 하나를 걸고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감행한 유학이 너무도 값지면서도, 그 기간이 너무도 길게 늘어지다 보니 타이틀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곳이 독일이기도 했구요. 게다가 10년 유학을 했음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타이틀을 딸 수 없어 그냥 하산하는 경우도 간간이 보게 되는 곳도 이 곳 대학이었습니다. 
시간이 느릿하게 가는 독일의 특성상, 학생으로 있다 보면 자신이 나이가 든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한국에 가서 마음을 다치게 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나이만 먹고 겨우 타이틀 하나, 그것도 영어권이 아닌 비주류의 타이틀... 야심찬 자신의 새 각오를 일시에 무너뜨려 주었던 곳이 '고국'이었으니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YS님이 98년도에 올려놓으신 환율에 못 이겨 저는 짐 싸서 고향행을 택했지만요.  

2. 두번째 이유는 '학생'이라는 철저한 신분 보장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은 '학생'이라는 신분이 '공부 하느라 생산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보호되어야 하는 대상중 하나로 자리잡아 있습니다. 그러니 학생신분만 보장이 되면 당시 등록금은 당연히 무료에다, 이에 따르는 온갖 혜택들을 더불어 보게 되는 것이었지요. 
예를 들자면, 교통비는 거의 안 내다시피 할 수 있었습니다. 교통비 명목으로 한 학기당 가져가는 돈은 다른 비용에 비해 결코 많지 않습니다. 현재도 학기당 채 10만원이 넘지 않습니다. 그걸로 6개월간 일정 거리의 버스나 전철, 인근의 기차(ICE 제외)까지를 모두 무료로 타고 돌아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텔레비전 시청료, 전화사용료 등의 비용을 학생은 면제나 할인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학과에 따라서는(미대나 예술사 등) 박물관 등의 출입을 경우에 따라 무료로 할 수도 있었지요.(이는 지금도 적용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학과에 관계없이 학생이면 할인은 당연한 것이구요. 이 모든 혜택을 공짜로 즐길 수 있으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때로 안 나오려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외국인이라고 그 부분에 차별을 두지는 않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었지요. 그러니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없는 천국'이 독일 대학이었고, 독일 자국민들에게도 '학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과 함께, 최소한 학교에서 삐대면 공짜로 공부하면서 웬만한 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누군가 등 떠밀어도 나오기 싫은 곳이 대학이라는 다정한 울타리였습니다.



독일 대학의 현실...


그 동안 끊임없이 말이 많았던 '등록금'은 2007년 여름학기를 시작으로 현실화 되었습니다. 지방분권이 잘 되어 있는 독일이니, 주마다 사정은 다릅니다. 지금 현재까지 등록금이 없는 주도 사실상 존재합니다. 이 곳 '바이에른' 주 대학들은 현재 학기당 500 유로를 등록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독일의 전통적인 오랜 학제가 미국식 '학사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졸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독일 학제는 '8학기의 미국식 학제'로 차츰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졸업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엄청 빨라졌지만, 그 대신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심층적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타의에 의해 박탈당해 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졸업을 위해 그저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강의를 듣기도 벅찬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눈에 보기 쉽도록 간단하게 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마기스터(Magister)  배철로(Bachelor)
 제대로 된 학문에의 심층적 연구 

흰머리 대학생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이들에게는
반가운 학제(실업) 
 8학기의, 짜여진 커리큘럼대로 움직이는,  
우리나라 대학과 비슷한 양상

한층 젊어진 대학

빠른 시간 내에 졸업을 할 수 있음(5년 이내) 


 졸업까지 기약없는 학업(5-10년)  심층적인 연구 불가능,
예전에 비해 따라가기식 수업


화난 대학생들...

지난 수요일에 학교에 다녀온 제 아이들이 묻더군요. 
"오늘 무슨 날도 아닌데, 왜 시내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엄청 시끄럽고, 버스도 다른 데로 돌아서 왔어요!"

수요일에 바이에른주 에서는 주 안에 있는 8개 대학 (뮌헨,뉘른베르크,아이히슈타트,바이로이트,밤베르크,뷔르츠부르크,아우크스부르크,레겐스부르크)에서 자체적인 가두시위를 벌였습니다.
한달 전에 벌인 상황과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장기화 조짐이 보이는 군요.
게다가 이번에는 쉴러(Schüler: 고등학교 이하 학생)와 슈투덴트(Student: 대학생), 교사모임(Lehrerverband) 까지 연대를 했습니다.
바이에른의 주 수도인 '뮌헨'에서는 일부 대학생들이 대학 부근에 천막을 치고, 이번주 내내 이들의 눈에는 그저 "부정당하고 시대착오적"이기만 한 교육 시스템을 위해 투쟁을 벌인다고 합니다.


그저 바이에른의 상황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바이에른 대학들끼리 이 날을 정해 시위를 벌였을 뿐, 이미 등록금 투쟁은 전 독일 대학들의 대대적인 투쟁으로 확산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걸 위해선 부자 부모"
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뮌헨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요구하는 건 무엇일까요?
쉴러(고등학생 이하)들의 요구는 적은 인원의 학급, 보다 많은 선생님의 확보, 보다 더 많은 지원 등입니다. 오늘의 화두는 아니니 이만...


대학생들의 요구...

등록금 폐지
더 많은 강의실과 세미나실의 확보
(지금으로서도 우리보다 훨씬 여건은 좋아보입니다만)
학비 대출 시스템 정비

그와 함께...
마기스터와 배철로 시스템의 정비
(Die Reform der neuen Bachelor- und Magisterstudiengänge)

위의 세 가지 요구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렇다면 <'마기스터'와 '배철로' 시스템의 정비>는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독일에서는 대학에 지원을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학업을 어떻게 마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과거에 '마기스터'를 목표로 학업을 시작한 학생들은 지금처럼 타이트하게 짜여진 수업에 맞추어 강의를 듣지 않았습니다. 모든 강의와 세미나는 본인이 학기초에 본인의 의지에 맞게 결정해 수업을 듣거나 발표(프리젠테이션)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바뀐 '배철로' 시스템에 비춰 보면 때로 자신이 대체 몇 학기에 해당하는지 조차 가늠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 라는 학생이 2년전 어느 대학에 광물학 마기스터(광물학은 디플롬인가요? 아시는 분..)과정으로 입학을 하였습니다. 공부를 하는 도중에 그는 학업에 필요한 여행을 다녀오느라 일년 동안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에 다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교수의 방식이나 주 전공이 자신이 연구하고 온 분야와는 좀 달라 고민한 나머지, 다른 대학에 있는 교수들을 알아보던 중, B 대학 어느 교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는 다음 학기를 위해 B 대학에 등록하고자 합니다.(독일은 우리처럼 한 대학에 들어가 그 곳에서 졸업까지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대학을 옮겨 다양한 교수와 다양한 교육을 접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평준화'라고 해야 하나요.. 일명 '센' 대학 없습니다. 최근 들어 생긴 랭킹 또한 믿을 만한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어쨌든...
등록하려고 보니...  웬걸, B 대학 광물학과는 '배철로' 과정이네요. 
짜여진 커리큘럼을 보면 A는 거의 1학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민되는 A...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학기를 인정받기도 힘드니 결국 다른 학교를 알아보지만... 역시나 힘듭니다. 현재 '마기스터'과정이 남아 있는 대학도 기존의 학생들에게만 적용시킬 뿐, 새로 들어오는 학생은 설령 같은 '마기스터'라 할지라도 '배철로' 과정으로 받아주려고 하니까요.  
인터넷 세상이 되다 보니 인터넷으로만 '대학 변경' 희망자들을 접수하는 시스템은 단 1%의 예외도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마기스터'과정으로 오랜 학기를 거쳤음에도 인터넷으로는 '배철로' 1학기 밖에 적용되지가 않습니다. 물
론 원하는 대학의 교수와의 직접 접촉 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으나, A와 같은 경우는 일년의 공백을 설명하기에 무척 애를 태워야 할 듯 싶습니다.

얼마전 라디오를 듣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라디오 디제이가 진행을 하던 도중, 대학생들의 시위에 관련된 '뉴스'를 말하고 나더니, 이어서 이렇게 비아냥 거립니다. 

"배철로... 이거, 발음 잘 하셔야 합니다. '배-철로'가 아니라, '배철로'입니다. 행여라도 길~게 '배-철로'라고 하면 안 되구요, 빨리빨리, '배철로' 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영어의 발음 이야기가 아닙니다. 독일식 과정 '마기스터'에 비해, 빨리빨리 수업 듣고, 시험보고, 빨리빨리 졸업시키는 '배철로' 제도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거림이지요. 

빨랑빨랑 공부하고 빨랑빨랑 졸업하라는 듯 등을 떠미는 '배철로' 시스템... 
두루두루 연구하고 학업에 몰두하던 독일식 깊은 학문대신, 어차피 세계 우수 대학 랭킹에 몇개 들어가지도 못 하고 인정도 못 받을 바에야 어서어서 졸업하고 사회에 빨리 진출하라는 그것...
그로 인해 이제는 나이 든 학생도 줄어들고, 보다 풋풋하고 활기있는 모습(?... ㅜㅜ)으로 거듭나는 독일 대학의 새 모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좀 아쉬운 감이 많지만, 얼마 안 있어마기스터와 배철로의 과도기에 걸쳐 있는 이 학생들까지 다 졸업을 하고 나면, 그때는 '배철로'만의 시스템으로 보다 질서있고 체계적인 대학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학 등록금 폐지'라고 굵은 명분 아래, '마기스터와 배철로의 시스템 정비'를 함께 부르짖는 대학생들의 외침은, 등록금 만큼이나 '배철로' 제도의 폐단이 지금 현재로서는 많은 학생들에게 있어 학문 연구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반증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학교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그들의 기치를 보며, 미국의 시스템(꼭 미국이라고는 하기 힘들겠지요. 이미 여러 나라가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니까요)이 과연 독일 대학의 오랜 고민을 풀어낼 대안이며, 그것만이 최상이었을까 하는 깊은 의구심을 가져보게 됩니다.

등록금 500유로에 '부자 부모'를 들먹이는 이들의 모습...
그렇다면 등록금 천만원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쩌면 '재벌 부모'라야 아이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는 있지만 '재벌'은 아닌 부모는 그럼 뭘까요?
아마도 자신은 헐벗어도, 또 자신은 어깨가 빠질 것 처럼 고된 하루를 보내도,
자식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우리 사회의 훌륭한 부모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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