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으로 지어진 단골식당에 갔다. 메뉴를 주문하고 한옥이 주는 편안함에 한껏 빠져있을 즈음,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음식이 담긴 접시에, 음식보다도 튀는 붉은빛 꽃가지가 있었으니,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반색을 했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치자꽃이, 너무나 예쁘게 피었기에, 꺾어서, 음식상에 놓아봤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 가지런히 떨어지는 그 분 음성이 이 꽃의 붉은 기운과 어우러져 어쩐지 더 값지게 보인다.
"이게 치자꽃인가요?"
묻는 내게, 그분은 그렇다고 하시고 음식을 놓고 나갔다.
꽃은 열매와 색이 닮기 마련인데, 노란 치자와 붉은 꽃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서 즉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나 치자꽃은 이 꽃과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치자꽃이라고 알려주신 분께 다시 묻는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 꽃 이름을 알려주는 앱으로 열심히 포커스를 맞춰봐도 엉뚱한 꽃만 나오기에 나중에 찾아볼 요량으로 일단 사진으로 남겼다.
볼수록 빛이 참 곱다. 이런 색을 정확히는 주홍색이라 한다. 붉은 색이라도 '단(丹)'과 '홍(紅)'은 다르다. '단순호치(丹脣皓齒)'에서의 '단'은 삼원색으로 쓰이는 빨간색에 가깝지만, 주홍색은 그보다 더 환한 기운이 느껴지는 붉은색이다. 빨강과 주황의 중간쯤 되는 색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에 나오는 색은 일반 빨간 치마보다 더 화사한 감이 돌기에 '이왕이면'을 붙였을 거라 생각된다. 접시에 놓인 주홍색 꽃과 어우러지는 음식들의 색감에서 전통색의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되니 음식 하나 하나를 먹는 맛이 배가 되었다. 그것이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최근에 우연히 이 꽃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하늘에 별이 달리듯 붉은 꽃들로 치장한 석류나무 그대로다. 주변에 있던 분께 물으니, 이 꽃은 석류 꽃이라고 한다. 그래, 그래야지, 꽃과 열매가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하는 법이지.. 하는 생각을 하며 붉은 꽃이 가득 핀 석류나무를 한참 쳐다보았다. 너무도 풍성한 주홍빛 향연이지만, 접시에 놓인 단출한 꽃가지 하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짙푸른 석류나무, 그 초록의 바다에 풍덩 빠진 석류꽃이 전통 단청에서 보여지는 순박한 멋이 있다 치면, 접시에 놓여 있던, 치자꽃인 줄 알았으나 본디 석류꽃이었던 그 한 송이 꽃은 받는 사람을 위한 배려와 정성, 다른 재료와의 값진 어우러짐이 있었기에 내게 더 소중한 느낌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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