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선이 새로 생긴 이래 수원역에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의 오랜 기억 속에 수원역은 1호선 종점, 묵은 체끼를 토해 내듯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내리던 곳이었는데, 노선이 천안·아산까지 뚫리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는 분당선도 연결되었다.
이른바 '세기 말'에 와보고 처음이니, 세월이 흐른 만큼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그때의 후줄그레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새 건물이 많이 낯선 감이 들어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수원역과 함께 수원터미널도 자주 이용했었는데, 터미널은 아예 딴 동네로 사라졌다.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작고 허름하고 북적거리는 터미널에서, 지방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곤 했었다. 터미널이 새로 이전할 거라던 말에, 제발 빨리 좀 이전하라고 간절히 바라면서 낯선 남자들의 담배연기 속에 캑캑거리며 서 있던 그때가 떠오른다.
수원역 주변 '화서'에 처음 방을 구하러 가던 날도 생각난다. 적은 돈으로 방을 얻자니 서울에서는 불가능했고, 1호선 전철을 타고 어찌어찌 수원으로 향하던 차에, 갑자기 내 눈에 정말로 허름한 동네가 들어왔다. 화서역이었다. 수원역까지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바로 내렸다. 집들은 낡았지만, 그곳에는 내가 가진 돈에 맞는 싼 집이 있을 것만 같았다. 부동산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내게 하는 말이,
"다방이라도 알아봐줄까?"
그 돈으론 택도 없다는 소리였다. 그런 동네에서도 집을 얻지 못한다는 실망감과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으로,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온 곳이 '화서'였는데, 지금의 화서는 천지개벽을 했다.
처음 수원에 왔을 때, 노상에 무슨 보따리를 꺼내놓고 그 속에 괴물이 들어있다며, 가던 사람들을 붙들어 세우던 약장수가 왜 그리 신기하던지, 끝내 그 보따리가 풀리는 건 보지 못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터미널마다 유독 그런 풍경들이 많았던 것 같다. 수원역 근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떤 날은 만원 전철 속에 서서 오느라 멀미를 해서 내리자마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이 앞을 절뚝거리며 걷던 날도 있었고, 멀리서 친구가 온다고 해서 들뜬 마음으로 대합실을 서성이던 날도 있었다. 지방에서 늦게 올라온 사람들이 '따블'을 외치던 길 위에는 여전히 택시들의 물결이다. 그때의 그 절실함과 악착같던 다짐들도 새삼 머리에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가 그래도 좋긴 좋았던 때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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