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역을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었다.
천안아산역(KTX역)에 갈 일이 있었는데
차를 가져갈 형편이 안 돼서
전철 1호선을 타게 되었다.
천안아산역을 가려면 신창행을 타야 했지만
천안역까지 가는 열차가 먼저 오길래
갈아탈 요량으로 나도 모르게 올라탔다.
어쩌면 그 순간 내 맘 속에서는
그곳에 꼭 들러야 할 것만 같은
낯선 망설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천안역 -
천안은 나의 펜팔이 살았던 곳이다.
중학교 2학년, 한창 팝송을 듣던 때였다.
팝송책 뒤에 붙어있던 펜팔 신청 엽서를
호기심 반으로 작성해 보냈는데,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질 때쯤
전국 방방곡곡에서 편지가 밀려들었다.
중학생이었으니 그저
미지의 세계에서 온 편지들이 신기하고
너무도 재미있기만 했다.
보내진 않고 받기만 하던 편지들 속에
어쩐지 답장을 하고 싶은 한 아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지를 보냈다가
답이 없으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내게 답이 없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 편지에 적어 보내던 그 아이..
시골아이라서 인지 맑고 순수한 느낌이 좋아
그렇게 그 아이와 펜팔을 2년 정도 했던 것 같다.
사진 중간쯤에 역 바깥으로 롯데리아가 있었는데,
환승 때문에 잠시 내린 거라서
아직도 있는지 없어졌는지
역 밖에 까지 나가보진 못 해서 모르겠다.
설령 나가본들 그때가 언제라고
롯데리아가 아직까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있으면 또 뭐 하겠는가,
옛 길에 오면 늘 맘만 아프다.
길은 그곳에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88 올림픽 열기로 술렁이던 그때,
무작정 이곳에 와서 전화를 걸어
생면부지의 그 애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그때 그애와 걸으며 둘러본 천안역 인근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시골이었다.
전철 1호선 같은 건
계획에도 없던 때였음은 말할 나위 없고.
집으로 오기 전 천안역 앞 롯데리아에서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하하 호호, 깔깔 껄껄 웃으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부랴부랴 집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신창행 열차를 갈아타고
전철 창으로 스쳐가는 천안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그 아이가 살던 동네도
그 인근 어딘가에 있었을 테지만
너무도 바뀌어버린 나머지
어디가 어딘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사진들을 찍은 게
벌써 일년 전 쯤 겨울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아산역에 내리면
KTX역인 천안아산역(온양온천역)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이 연계되어 있다.
KTX 천안아산역은 천안의 중심을 바꾸었고
'불당신도시'라는 충청권 최고 신도시를
만드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 KTX천안아산역과 팬타포트 -
그새 나는 일 때문에 천안에도 잠시 살았었다.
천안에 살지 않았을 때는
'천안'이라고 하면
늘 펜팔이었던 그 아이가 떠오르곤 했는데,
얼마간이라도 천안에 살다보니
이제는 천안을 떠올리면 그애에 대한
기억들만큼이나 다른 기억들도 앞다퉈
함께 떠오르게 되었다.
추억에 덧칠이랄까...
천안에 살면서도 그나마
천안역 앞 광장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런 덧칠이 싫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직도 그날의 모습 하나하나,
길에서 나던 흙먼지 내음까지도
내 기억의 한 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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