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 흘러들어와 다시 낯설게 떠나가네"
슈베르트(Franz Schubert) 겨울나그네(Die Winterreise)의 시작은 이러하다.
방랑자라고 해야 할까, 떠돌이 청년은 낯선 도시에서 한 여인을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 5월의 연애는 그들의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여인은 그에게 사랑을 속삭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혼인을 거론한다.
그런데 이제 눈 앞이 아득하고 세상이 온통 눈 속에 파묻혀버린 듯 하다. 그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청년은 깊은 밤, 잠든 연인의 문 앞에 "Gute Nacht! (밤인사: 구테 나흐트)"란 인사를 남기고 다시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첫곡 . Gute Nacht (안녕히)
겨울나그네의 첫 곡 'Gute Nacht'는
연인을 잃은 청년이 결국
먼 길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이의 청혼을 받아들인 그녀..
벌써 오래 전 "사랑은 이동하는 거야."
라는 카피 문구 하나로 시선을 끈
통신사 광고가 있었다.
그 유명한 카피 한 줄과 비슷한 대목이
이 곡에도 가사로 들어가 있다.
- 풍향계 -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의 첫번째 곡,
Gute Nacht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다시 방랑의 길에 나선 청년은,
연인의 집 앞에서 풍향계를 보게 된다.
두 번째 곡. Die Wetterfahne(풍향계)
바람이 마치 연인의 집 풍향계를
가지고 노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풍향계는 다시
도망자 같은 신세의 딱한 자신을
맘껏 조롱하고 있는 듯 하다.
피아노 반주를 들으면 아마도
풍향계가 바람에 마구 돌아가는,
그런 광경이 충분히 그려질 것이다.
청년은 여기서 또 다른 망상에 젖는다.
바람에 내맡겨진 채 돌아가면서
자신을 조롱하는 풍향계는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으로,
풍향계를 돌리고 있는 바람은
자신을 비웃는 청혼자로,
두 사람이 청년의 고통을 보며
맘껏 조소하고 있는 듯 하다.
"아프니?" 하면서.
세 번째 곡. Gefror'ne Tränen(얼어붙은 눈물)
차갑게 흘러내리는 눈물에,
"나 지금 우는 거야?"하는 청년,
차가운 겨울 공기에 눈물마저도
얼어붙는 듯 하다.
"뜨거운 속에서 나온 눈물이
어쩜 이리도 차가울 수 있을까?"
맘 같아선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난 눈물로
차가운 세상을 다 녹여버릴 것만 같은데,
청년의 눈물은 그저 미적지근하게 흘러,
얼음방울이 되어 떨어져 나간다.
▽ ▽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에서 방랑자의 겨울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연가곡집의 제목인 겨울나그네는 원제가 ' Die Winterreise (겨울여행) ' 이다. 독일에서 여행을 가리키는 단어는 두 가지 인데, 그 중 '(Die) Reise'는 잠깐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꽤 오랜 기간, 어쩌면 기약이 없는 여행의 경우에 사용한다. 더군다나 겨울 날씨가 최악인 독일의 겨울날 여행이라... 상상만으로도 얼어붙는다. 그러므로 제목만 보아도, 기약 없이 험난한 겨울여행임을 알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전체 24곡 중 몇 곡을 더 포스팅 할 생각이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버전으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애청하던 곡들이기에, 몇 곡 더 올려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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