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인연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아무 때나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 수 있는 책이다. 예전 열광하던 시드니 셀던의 추리소설과 또 다른,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서양 소설들보다 감정이입도 더 쉬운 것이 그의 소설을 집어드는 이유다.
일년 쯤 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가면산장 살인사건>이 조금 실망스러웠던 나머지, 최근 인기가도를 달리는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도 사놓고 아직 읽지 못 하고 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등을 너무 보았던 탓일까,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그 밀실살인 스토리 라인들과 자꾸만 겹쳐서, 읽는 내내 추리소설의 묘미인 긴장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채 마지막 장을 덮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은 그와는 별개의 이야기고, 곧 영화로까지 개봉될 예정이라, 개봉 전에는 마저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자꾸만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오래 전 읽었던 그의 소설 <유성의 인연> 때문일 거라 생각된다. '유성의 인연'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옆에 있던 숫자 1은 미처 보지도 못 했었다. 그 많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 중에 2권까지 있는 소설부터 고르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 책을 고르게 된 것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유성이 쏟아진다는 밤, 그 '페르세우스 유성군'을 보기 위해 어린 3남매가 집을 나서는 데서 소설은 시작된다. 일기예보대로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기필코 유성을 보겠노라 부모님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고이치, 다이스케, 시즈나.. 그러나 아이들은 결국 유성 대신 비를 만나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야시라이스'로 제법 단골들이 모이는 아리아케 식당, 삼남매의 집이기도 한 그곳에서 그 시각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자전거를 묶기 위해 집 뒤쪽으로 갔던 다이스케는 집에서 급히 빠져나오는 남자를 보게 되고, 아이들은 부모의 시체 앞에 넋이 나간다.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 부모 없이 서로 기대며 지내온 그들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되갚아주려 셋이서 공모해 사기를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어릴 적 끝내 보지 못 했던 유성우를 기다리며 자신들의 소원을 빌 날을 고대한다.
<유성의 인연>을 며칠 전 일본 드라마로 보게 되었다.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 맡겨진 3남매가 산에 올라 다시 한 번 유성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그리고 지금, 잡히지 않은 채 이대로 묻혀버리게 된 범인의 몽타주 앞에서 세 사람은 착잡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레시피를 훔쳐보던 어린 날, 고이치는 아버지로 부터 직접 하야시 라이스를 만드는 비법을 배웠고, 아버지가 죽고 난 지금 그 레시피도 그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남매 모두의 기억 속, 아버지가 만든 하야시 라이스의 맛과 향은 추억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도, 또한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 유성우를 보러 나갔던 삼남매의 유성의 인연은 그 이후로도 참 끈길지게 세 사람에게 들러붙어 있다.
그런 와중에 아리아케의 '하야시 카레'와 똑같은 맛을 내는 식당을 알게 되고... 다이스케의 기억 속 남자가 드디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스포일러는 여기까지만...)
책을 읽고 나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늘 이렇다. 더군다나 웃음코드가 다소 과장된 일본 드라마다 보니 드라마로 먼저 보려면 그런 부분은 참작해서 보는 편이 낫다. 책을 먼저 읽었더라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드라마로 보았다는 점.. 책을 읽으며 상상한 이미지와 드라마에서 눈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맞춰보는 재미.. 그런 면에 점수를 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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