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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주자청의 수필, 아하

by 비르케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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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청(주쯔칭)의 산문집에 '아하'라는 작품이 있다. 

 

'아하'는 위 씨의 산장에 몸종으로 오게 된 여자아이의 이름이다. 방학을 맞아 산장을 찾은 위 씨의 딸 위양과 그 친구들, 그리고 위 씨의 친척인 작중화자 '나'의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위 씨가 일부러 그녀를 들였다.

 

아하가 처음 온 날, 생기 없는 얼굴에 너무도 궁색한 행색이라, '나'는 그녀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무시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그러나 위양과 그 친구들은 아하를 겪어보고 난 이후 그렇게 살기에는 아까운 똘똘한 아이라며 자신의 옷도 빌려주고 흐트러진 머리칼도 곱게 빗겨준다. 

 

어느 날부턴가 무표정하게 앞만 보며 걷던 아하의 얼굴에 빛이 나기 시작한다. 몰라보게 달라진 아하를 보며, '나'는 이제 아하에게 말 한마디라도 건네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좀처럼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나'가 서재에 있던 어느 날 아하가 들어왔다. 그녀는 연필깎이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나'는 놀란 마음에 어물거리다가 직접 연필깎이 있는 곳으로 가서 연필 깎는 방법을 알려준다. 빤히 바라보는 아하의 눈길에 당황해서 얼른 돌아와 신문을 폈는데, 눈은 계속 아하만을 지켜보게 된다.

 

그 이튿날 '나'는 부엌에 있는 아하를 보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를 또 눈으로 좇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아하에 관한 그림같은 묘사.. 자신의 일기장에도 아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하는 이미 혼인한 몸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살다가 아버지가 어떤 남자와 혼인시켰는데, 도박을 좋아하는 남편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친정으로 다시 돌아와 산 지 일 년도 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부시게 변해버린 아하를 남편이 발견해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데 얼마나 아하가 완강했던지, 남편은 결국 80원을 내면 아하를 포기하기로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백방으로 아하의 남편감을 찾았으나 그 큰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어느 날 위 씨네 아제로 불리는 이가 길에서 아하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하는 마나님이 되어 있더란다. 그러면서 아하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이제 자기가 남자를 골랐노라고.

 

위양에게서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서둘러 산장을 떠난다. 아름다운 산장의 호수도, 더군다나 아하가 있던 그 부엌은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주자청은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다. '아하' 편에서도 산장 주변의 경치에 대해, 또 아하가 달라져가는 모습에 대해, 마치 눈 앞에서 보는 듯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아하의 얼굴과 표정,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감정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그리고 있다. 

 

꿈도 많고 자존심도 강한 아하는 답답한 현실에 가려져 아무런 희망 없이 수동적인 삶을 살았지만, 위양과 그 친구들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적극적으로 현실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당돌해 보일지라도, 이제는 스스로 남편감을 찾는 당당함도 가지게 되었다.

 

살면서 위양과 그 친구들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큰 행운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 남과 다름을 발견해 이끌어줄 수 있는 조력자가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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