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장을 보고 싶다는 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친구는 아이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그리고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빈(Wien)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내게 톡을 보냈다. 벌써 유럽여행 열흘째에 접어든다며, '빈행 열차에서 보는 눈 덮인 들판이 꼭 우유 바다 같다' 고 표현했다.
"우유바다" 같은 설원을 떠올려 보았다. 기차에 흔들리며 바라보는 설원의 기억이 금세 머릿속을 점령한다. 오래전 어느 날, 아쉬움을 달래며 떠나오던 내 기억 속의 그날도 그랬다. 폭설이 내려 비행기 날개까지 얼어붙었던 날이었다. 그대로 더 머물고 싶었던 그날의 눈 내리던 풍경이, 살면서 뇌리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또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그곳에 머물던 때 무수히 많은 크리스마스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덕분에 기억은 사진으로 남아, 그리울 때마다 파일들을 뒤적이며 들뜬 마음을 위로하는 게 이맘때 습관이 됐다.
크리스마스 시장은 도심 광장에서 11월 말쯤 단장을 시작해 대부분 크리스마스 전까지 열린다. 그러므로 행여 유럽 크리스마스 시장을 보려는 이가 있다면 일정을 좀 앞당기는 편이 좋다. 친구의 경우도 아이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방학이 되기 전 출발했었다.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명절처럼 도시가 휑하니 비는 시기다. 며칠 간의 연휴를 얻었으니 고향을 가거나 여행을 가는 기간인 것이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휴면 상태에 들어가므로 크리스마스 당일은 외지인에게 그저 쓸쓸한 날일 뿐이다.
그래도 도시 곳곳에 이런 장식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 크리스마스 시장이 없다고 아예 낙심할 일은 아니다. 이런 아름답고 고요한 적막감을 사랑한다면 훌훌 털고 나서도 된다.
크리스마스는 풍요의 시즌이다. 전에는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달달한 먹거리를 준비했지만, 이제는 견디는 차원이 아니라 누리는 듯하다. 따스한 조명과 반짝이는 장식 아래, 크리스마스 향기 가득한 슈톨렌, 마치판, 렙쿠헨 등 달콤하고 따사로운 추억의 맛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된다.
추운 날 글뤼바인도 빠질 수 없다. 크리스마스 장에서 데워 판매하는 이 와인을 마셔본 이는 안다. 손에 쥐면 얼마나 따스하고, 그 맛은 또 얼마나 향긋하고 달콤한지... 크리스마스 시장 어귀에 옹기종기 모여 두 손으로 글뤼바인 잔을 꼭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과 진한 글뤼바인 향기는 아직도 생생하고 진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친구와의 톡으로 내 맘은 벌써 크리스마스 시장 어딘가를 맴돈다. 이 시즌이 되면 반짝이는 전구와 진한 향신료, 달콤한 과자와 와인 향기가 내 마음을 뒤흔든다. 그리고 어딘가 빈 공간을 가로지르는 익숙한 바람소리도 들려온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짐을 싸서 출발해야 할 것만 같은 이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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