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이 사진도 역시나 그때 사서 아직까지 가지고 있던 엽서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다. 앞쪽으로 시계가 달려 있는 탑은 '슈바벤토어(Schwabentor)'이다. 이 부근이 프라이부르크 중심가다. 이곳을 부지기수로 지나다니던 날들이 어제 같은데, 참 세월이란 녀석..
프라이부르크는 꽤 오랜 세월 오스트리아의 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 있다. 도시 이곳저곳에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샘물이 솟았고, 여기저기 길 가장자리로 작은 도랑이 흘렀던 기억도 난다.
이렇듯 멋진 도시에, 딱 시골에서 상경한 것 같았을 20대의 내가 있었다. 가져온 물건이라곤 옷 몇 벌과 책들, 그 외 딱 있어야 할 최소한의 물건들밖에 없던 나였고, 있는 동안 고향에서 우편이든 뭐든 한 번도 따로 받은 적이 없었으니 궁색함으로 말하자면 정말 최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집주인이 "이번 주 중으로 방 빼!"라고 해도, 맘 편히 알았다고 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었다.
그 도시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 몇몇이 고향으로부터 찬거리나 과자까지 공수 받던 것에 비하면 좀 서글프기도 했지만, 독일에 간다는 폭탄선언을 던지고 온 나로서는 그마저도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너 그 옷 좀 그만 입으면 안 돼?"
안 됐었다... 옷이 몇 벌 밖에 없었기에... 더군다나 그 도시를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에 짐을 만들면 안 됐었다.
독일 도시들에 대해 말하자면, 아래로 갈수록 물가가 대부분 비싸다. 유학생들도 아래로 갈수록 왠지 더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언어는 위로 갈수록 표준어에 가깝다. 프라이부르크나 뮌헨 같은 남부 쪽의 언어는 방언이 심한 편이다. 독일에 가서야 비로소 느낀 점이다.
어쨌거나 그때 내가 그 도시를 떠나려던 이유는, 위에 있듯이 비싼 도시, 여유 있는 예대생들(음대나 미대)의 도시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실제로 몇 년 뒤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외국 친구를 만난 적도 있으니, 아주 틀린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를 수 있음을 전제한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가 판치는 세상이니, 어디고 방언이든 사는 모습이든 비슷비슷해져서 독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썩 행복하지 않았다. 당시에 아래와 같은 일도 있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교민 사이트에 내가 이런 글도 올렸다. 독일어에 얽힌 웃긴 일화인데, 그 사이트에 일부러 들어가서 캡처한 사진이라서 스마트폰에서는 안 보일 수도 있겠다.
내용을 대략 설명하자면 이렇다.
오래 전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의 일이다. 주인이 "봉지 줄까 어쩔까?" 하고 물었다. 나는 그때 독일어로 '봉지'란 말을 몰라 알아듣지 못 했다. 그냥 "됐어요." 라고 하고 싶은데, 독일어로 뭐라 해야 하나 하다가 얼떨결에, "끝! (독:Fertig)"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때 우리나라는 뭘 사든 봉지에 담아주던 때라서, '봉지를 줄까'라고 했을 거라곤 당연히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나서 얼마 뒤, 또 한 번 그 "끝! (Fertig)!"이라는 단어를 더 엉뚱하게 사용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공주(Princess) 친구들과 비싼 저녁을 먹고 디저트까지 먹으러 갔는데, 나는 디저트를 주문 안 하고 싶었고, 웨이터는 내게 뭘 주문할지 묻는 상황에서였다..
그냥 과거 속 또 과거의 일화이다. 이렇게 단박에 설명조로 몰아서 쓰고 보니 참 내용이 생뚱맞고 재미없긴 하다. 어쨌거나 그 글(아래글) 속에 있는 공주과(꽈) 친구들이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난 그녀들-3'을 포스팅하며 떠올리게 되는 이들이다. 서로 형편이 다르고, 또 아직 어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녀들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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