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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2008년 마지막 날..

by 비르케 200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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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수 놓는 화려한 불꽃의 제전을 관람하려고
영하의 차가운 밤바람에 오들거리다가 결국 몇 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북향으로 자리잡은 나의 집이
한겨울 추위만큼이나 얄밉게 느껴지는 게 오늘같은 날이다.
시내쪽으로 나 있지 않은 창문이라서
시내에서 별 불꽃쇼를 다 해도 소리만 무성할 뿐,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기어이 불꽃 한 점이라도 보고 싶은 이 마음..
아마도 한 해가 가고 있기 때문에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새날을 뭣 때문에 기리려고 이리 안달 하는 걸까.
나도 알 수가 없다.
오늘만 해도 내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한 가지 굳이 끄집어 내서 말하자면 하나 있다.  

그전부터 고장나서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곤 하던 변기가
어제부터 드디어 발악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맘잡고 '하우스마이스터'라 불리는,
집을 관리해 주는 분에게 연락을 했다.
집에 관한 한 온갖 일을 다 하는 사람이다.
물론 작은 일상적인 수리 정도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일이라고는 하나
이 시즌에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건 좀 망설여지는 일이다. 
크리스마스부터 줄곧 이어지는 휴가라서,
집에 가족이나 다른 방문객이 찾아와 있을 수도 있어
별일 아닌 일로 이 시즌에 전화를 걸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이 내 전화를 받은 하우스마이스터가 흔쾌히 와 주겠다고 해서
한 시간여 공사를 했나 보다.

온 김에 물빠짐이 안 좋던 세면대까지 봐달라 하니,
지하에 가서 뚜러뻥까지 가지고 올라와 해결해 주고 간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 한 해 마지막 날
목욕탕 안의 온갖 '쨀쨀거리는' 소리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가 하는 말이,
"당신 이거 안 고쳤으면 한달 물값이 6개월치랑 맞먹는 거 알아요?"
독일인다운 통계다.

어쨌거나 이 한해 마지막 날에 자기를 부른 데 대해
투정부리지 않고, 오히려 '고쳤으니 다행'이라는 그의 말,
이 사람들의 분위기상
고쳐진 걸 두고 엄청 놀라워 하는 모션을 취하는 내게,
"뭐 별로 한 거 없어요, 독일 물이 안 좋은 거 알죠? 석회가 끼어 있는 걸 긁어낸 게 전부예요." 
라며 그는 겸언쩍어 한다.
긁어내는 것도 한 시간 정도면 칭찬할 만 하지 않은가...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한해 마지막날 기념으로
평상시에는 그리 졸라대도 안 사주던 터키 음식 '케밥'을 사주었다.
사실, 십 년 전에 독일에 있었던 나만 '케밥'이란 단어를 쓰지,
요즘 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되너(Döner)'라고 부르는 그 '캐밥'을
아이들에게 먹이고는,
나는 절여둔 배추로 김치를 아주 매콤하게 담아
비비고 난 양념에다, 
어릴적 엄마가 김치 담으시던 날 그랬던 것처럼
밥을 양껏 비벼 먹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와 이 야밤에, 밥 한 숟가락 더 뜨고 싶은 간절함이..
이러면 안 되는데..

나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다.
아니, 나의 한 해가 이렇게 다 지나갔다.
새해는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 선배가 내게 했던 말,
"동요하지 말고 네 길을 가라!"
그 말마따나
나는 여전히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며,

2009년,
그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
지금쯤 산에 올라있을 내 고국의 수많은 이들처럼,
나 또한
마음속으로 간절히 나의 바램을 기원해본다.

2009년,
내게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꼭 일어서는 한해가 되기를...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2008년 마지막 날
뻥 뚫린 내 욕실의 변기와 세면대 마냥
2009년,  
하는 일마다 다 팡팡 잘 풀려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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