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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엉뚱한 휴일..

by 비르케 2009.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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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대개가 장 볼 일이 많기 마련이다.

커다란 배낭과 장바구니를 꽉 채워 장을 봐 놔도,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 먹거리로 오래가지는 못 하기 때문에
쉬고 난 다음날엔 어김없이 또 수퍼를 찾게 되곤 한다.

월요일이었던 어제도
마찬가지로 수퍼에 다녀왔어야 할 날이었건만,
목욕탕에 들어가 있던 녀석들이 안 나가고 싶다고 하는 통에,
집에 있는 거 그냥 긁어서 먹고 말았던 건데,
오늘 장을 보러 나가니
버스 정류장에서 부터 왠지 모를 황량함이 느껴졌다.

역시나 시내에 도착하니,
전철이 오는 시각을 표시하는 전광판의 시간이 이상하다.
다음 전철이 오는 시간이 15분이나 뒤다.

이럴 수가.. 이 추위에..
그제서야 멀리 상점들을 응시해 보니, 
문을 다 닫아건 게 눈에 들어왔다.
대체 오늘은 또 무슨 날인가..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물으니,
오늘은 바이에른 지역만 쉬는 휴일이라 한다.
그러니 달력에도 빨간 날이 아니지..
알았더라면 어제 분명 먹을 걸 사두었을 텐데,
오늘은 어찌 보내나.. 하다가, 일단 캐밥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먹을 걸 다 쓸어 먹은 것 같은데,
뒤져보니 그래도 또 먹을 게 나온다. 

쌀 1/2컵, 누들, 태국 라면 하나, 달걀 하나, 양송이버섯,
그 외, 감자, 양파, 냉동실에 새우 조금, 사과 몇 알.

 

이걸로 한 가지를 만들 수는 없을 듯 하고,
오늘 저녁은 완전 이것저것 기호대로..
밥 반 그릇,감자 볶음, 라면 하나(태국라면은 진짜 작다),
달걀 프라이 하나, 버섯과 새우를 넣은 볶음 누들..

아참, 저녁은 그렇다치고,
내일 개학을 맞은 녀석들의 아침먹거리와 도시락이 없다.

다시 거기서 달걀을 뺀다. 밥도 뺀다.
내일 아침은 계란볶음밥.. 됐고,
도시락은 내일 아침, 시내에 도착하면
버스 갈아타기 전에
얼른 길을 건너가 빵 몇 조각 사서 함께 넣어주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오늘 저녁 주인공은 누들이 될 듯...

처음 독일에 들어오던 날보다는 그래도 양호하다.
오던 날이 하필 토요일이라서
비행기에서 남겨 냅킨에 싸온 빵으로 애들만의 저녁을 해결하고,
다음날 휴일..
동네를 다 뒤져서 어떤 사람이 가르쳐 준 캐밥집에서 캐밥을 사왔었다.

지금이야 애들이 그야말로 죽고 못 사는 캐밥이지만,
첫날은 입이 깔깔해서 그랬는지,
종일 물고 뜯어도 채 반도 못 먹고 차갑게 뒀다가
결국엔 다음날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었다.

그때와는 그래도 확실히 다르다.
찾아보면 먹을 거리가 나오고 또 나오니..
또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른다.

마실 물도 아껴야 할 판이다.
쌀도 500g 포장으로, 물도 두세 병씩 사다 먹는 거라서
이렇게 휴일이 한번씩 지나가면 진짜 냉장고가 텅텅 비곤 한다.

이상한 건, 한국에 있을 때는 680리터 짜리 냉장고도 늘 가득 찼었는데,
지금 냉장고는 200리터 정도 되나.. 쬐그마한 건데도 그런대로 또 산다.
그럼에도 이렇게 휴일에 장을 안 보고 건너뛰는 날에도
먹을 게 나오는 걸 보면 그게 참 신기하다.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들도 2주 남짓의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  
아침 여섯시에 눈을 뜨고, 일곱시면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또 나는 내일 쓰러지게 장을 봐 와야 할 듯 하다.

신이시여!
나를 좀 더 튼튼한 여인네로 태어나게 해 주시지...
이 정도면 튼튼하다구요?
아, 예~
 

 
 
 

  
사진은 독일 온 첫날, 둘째가 캐밥 먹는 모습이다.
고픈 속에도 불구하고, 인상 써 가며 겨우 먹고 있다. 
모든 게 부족한 첫날 답게, 
콜라를 따를 컵도 없어서 대용으로 밥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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