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문 앞에 놓인 신문을 가져오면서 가끔은 생각했다.
'요새 같은 세상에도 이렇게 이른 시각에 배달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 힘든 나로서는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났다. 어렸을 적에 새벽이면 동네마다 내달리며 "신문이요!"를 외치던 고학생들의 모습마저 떠올라 마음 한 편에는 더 진한 경외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각에 일찍 깨어 홀로 신문을 돌리는 사람이 누군지, 쓸데없는 궁금증까지 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쯤 우연히 현관문에 '툭'하고 던져지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신문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신문을 배달한 사람은 '일찍 일어난 사람' 이 아니라 '늦게 자는 사람' 이라는 것을.
이런 경우 신문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온갖 사건 사고가 올라오는 스마트 기계들 덕분에 신문이 신문(新聞)의 기능을 잃은 건 이미 오래 되었으니, 하루 최소한의 지면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런데 유제품이나 죽, 생식 등 일부 먹거리 배달 업체들은 어떨까. 아무리 보냉백에 담겨 있어도 몇 시간 지난 제품에 클레임을 거는 소비자는 분명히 있을 테고, 새벽 이른 시각에 일할 사람 찾기는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소위 '아침형 인간'을 찾기가 요새 세상에 그리 쉬울 것 같진 않다. 탄탄한 직장에 일찍 출근해야 한다면 의무감으로라도 하겠지만, 아르바이트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5시 작업을 견딜 만한 사람이 과연 요새도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내 생각과는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배달을 하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요새도 신문 보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그들에게 신문을 보는 나는 신기한 동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신문을 오래도록 끊지 못 하는 건 특별히 신문이 좋아서도, 지면 기사를 꼭 읽고 싶어서도 아니다. 알고 보면 영업사원을 거절하지 못 한 이유 때문이다. 구독 만기가 될 때마다 영업사원은 때 맞춰 내게 전화를 한다. '이번에는 결코 끊어야지' 하다가도, 또 온갖 조건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끊어야지.' 하다가도, 결국은 영업사원의 애걸복걸에 넘어가서 재연장을 하게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오래 구독하시던 분이 해지하면 제가 문책을 당해요."
영업사원의 이 말 한 마디에 그만 빗장이 풀려 또 재연장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애걸복걸에는 그만큼 나를 매료시킬 만한 조건도 따른다. 한 달에 만 원이 안 되는 구독료로 신문을 보고 있으니, 그러고도 신문사가 건재한 게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
내가 신문을 끊지 못 하는 이유도,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알고 보니 '늦게 자는 사람들'인 이유도, 과거와 지금의 삶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측면에서 서로 이해가 가능하다. 내 맘대로 그들을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 판단하고, 경외감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이 옛날처럼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도 없고, 그저 시간 안에 신문만 가져다주면 되는 것이다.
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신문을 보는 것 같지만, 스마트 기계로는 접할 수 없는 값진 기사들을 신문속에서 누리는 호사를 갖게 된다. 설령 어쩌다 하루 정도 신문을 늦게 배달한다 해도 화낼 일은 아니다. 어차피 빠르고 정확하고 공정한 기사를 보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은 스마트 기계보다 느리고, TV보다도 느리다. 정확성에서도 밀린다. 공정성은 신문마다 성향이 다르니 그 또한 논외다. 그러니 내가 신문을 보는 이유에서도 그런 기대들은 이미 다 빠져 있다. 실제로 사흘치 신문을 한꺼번에 보는 경우는 내게 다반사다.
실시간 검색에서 밀린 기사들, 논란꺼리는 되지 않지만 도움이 되는 기사들,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 좋은 문장, 몰랐던 세상에 대한 이해 등을 위해 나는 신문을 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그것이 내가 신문을 밀쳐낼 수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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