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눈길을 끄는 소설을 발견했다.
스릴러물이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9월 발간작.
제목: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 원제: You Are Not Alone )
대부분 그렇듯 거창한 제목에 비해 원제는 참 소탈하다.
"넌 혼자가 아니야"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표정을 가진 여성의 얼굴이 반으로 나뉘어 있다.
어딘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듯 한 반쪽의 두 얼굴,
그리고 가슴께에 선명한 핏빛.
책 뒷면에 박힌 문장이 눈길을 끈다.
여자에게는 평균 여덟 명의 친한 친구가 있다.
그러나 어떤 우정은 죽음보다 위험하다!
서른한 살의 데이터 분석 시장 조사원인 셰이 밀러.
그녀는 어느 날 전철역에서 한 여자의 자살을 목격하게 된다.
바닥에 목걸이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옆에 있던 여자에게 말을 붙이려던 순간,
들어오던 전철을 향해 그녀가 뛰어든다.
그 찰나에 서로의 눈빛이 마주친다.
그녀의 텅 빈 눈..
죽은 여자의 이름은 '어맨다'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셰이는 전철역 근처에도 가지 못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죽기 전에 좀 더 빨리 붙들지 못했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운 셰이..
기어이 어맨다의 거처를 알아내 백일홍 다발로나마 추모를 한다.
이 소설은 스토리가 퍼즐을 맞추듯 장면 장면으로 나뉘어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시점도 셰이 밀러의 눈으로 본 1인칭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교차한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부터 범인으로 의심이 가는 인물의 수상한 거동이 펼쳐진다는 사실,
마치 "범인은 바로 나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맨다가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났는지 관심이 많은 무어 자매가 초반부터 등장한다.
그녀들은 어맨다가 죽자, 바로 어맨다의 노트북을 해킹하고 어맨다의 집에 침입해 감시카메라를 단다.
그리고 어맨다가 만났을지 모를 누군가를 수집하기 위해 추도식을 기획한다.
그 속에 백일홍 꽃다발을 든 셰이도 있다.
감시카메라에 잡힌 셰이를 의심하는 무어 자매가 드디어 셰이에게로 접근한다.
아마도 원제의 "You are not alone."은 무어 자매가 셰이에게 했을 법한 말이다.
그즈음 셰이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같이 살던 룸메이트이자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 친구 '션'에게 애인이 생겼다.
션의 애인 조디의 등장으로 셰이는 이제 자신의 방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유일한 친구인 멜라니는 결혼해서 아기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고, 재혼한 엄마도 멀리에 있다.
새 직장을 구해야 했지만 그 또한 어려운 일이다.
셰이에게 일어난 이 모든 고난들을 해결해준 친구들.. 따뜻한 무어 자매가 셰이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녀들은 셰이를 위해 전철 트라우마를 고쳐줄 전문가를 소개해주고, 안락한 거처와 새 직장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덧 셰이의 곁에는 여섯 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생겼다.
어맨다의 추도식에 쓰였던 사진, 그 사진에서 오려져 나갔던 여섯 명의 친구들은 이제 셰이의 주변에 모였다.
셰이가 어맨다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추적장치가 붙은 목걸이를 떼고 죽음을 택한 어맨다의 텅 빈 눈처럼 셰이도 변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셰이가 흐름을 주도해가지만 셰이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각각의 여섯 친구들과 어맨다의 사연들이 서로 연결되어 결국 '살인'이라는 모티브를 향하고 있다.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진 여자들의 사연에 공감이 가기도 하고, 그들의 묵인과 모략이 과하다 싶은 감도 든다.
그러면서도 또 그럴 수 있었겠다 싶어지기도 하다.
그녀들 중에 베스의 아픔이 왠지 가장 공감이 갔다.
시를 쓰는 남편을 오랜 세월 뒷바라지했는데, 병에 걸리자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베스.
시를 쓰라고 자신이 선물해주었던 장정노트를 찢어 메모 한 줄을 남긴 채 남편은 떠나버렸다.
베스에게 그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또한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 그들이었다.
그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를 위해, 스스로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를 자처한 베스..
이 정도 되면 대부분의 스토리를 알 것 같으니 안 읽어도 되겠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미궁이다가 막판에 다 밝혀지는 그런 류가 아니다.
물론 스릴러물이기 때문에 막판에 퍼즐이 완성되지만, 구성 자체는 조금 다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를 주고 시작한다.
하지만 읽다 보면 범인이 누구인가가 관심사가 아니게 된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있잖아."
누구나 위안을 얻을 것 같은 따뜻한 이 말이 악(惡)인 줄 알면서도 왠지 편안하다.
그와 함께 끊임없이 묘사되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무어 자매의 음성과 분위기...
읽는 사람마저도 거기에 도취되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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