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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민들레 홀씨 되어 바람 타고 솔솔

by 비르케 200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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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고 흐리기만 하던 날씨가 오랜만에 개이고 햇빛이 간간히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 이 엄마가 기침을 좀 덜 했지..ㅜㅜ

어제는 내가 기침을 심하게 하는 통에, 조르기 미안했던지, 둘이서 숲에 다녀온다고 하길래,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 하면서 그러라고 하니, 정말로 이 녀석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그저 나만의 생각이고, 
아이들은 알아서 숲에 가서 한바탕 뛰어 놀다가 머리카락까지 젖어 집에 돌아왔었다.

주말인 오늘이라고 다를까, 내 손까지 잡아 끌며 애원을 한다. 숲 입구가 아닌, 더 멀리 가고자 함이다.
마침 먹을 것도 떨어져 장도 보러 나가야 할 참에, 그래 가자, 하고 나갔다. 


입구에 접어들어 얼마 가지 않아, 저만치 달려가고 있던 작은아이가 내게로 되돌아 달려 온다. 
"엄마, 빨리 와 보세요. 여기 하트가 있어요!"


잰걸음으로 가 봤더니, 대략 이런 모습이다. 나무끼리 어우러져 하트 모양의 공간 하나가 만들어져 있고 그 곳으로 빛이 몰려들고 있다. 어른보다 감동 잘 하는 아이의 눈으로야 충분히 감동적일 수도 있다. 
"엄마, 참 예쁘지요?"
"그래, 예쁘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어?"
감기때문에 칼칼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하고는 다시 걷던 길로 접어든다. 

잠시 걷다가 한번 더 난리가 난다. 이번엔 둘이서 쌍나팔이다. 
"엄마, 여기 이거 뭐예요?"
"엄마, 여기 왜 이래요?"

어쩐지 눈 앞에 꽃가루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했더니만, 이 곳은 아예 꽃가루 천지다. 아예 구름이다.
안그래도 몸이 아프니 구름 속을 걷는 듯 한데, 비몽사몽 하는 김에, 신선 흉내라도 내볼까나... 
 "꽃가루 눈에 들어가면 눈병 나니까 안 들어가게 해!"
외치는 나의 소리까지 더해져, 조용하던 숲이 울린다. 


눈에 안 들어가게 조심하라는 내 한 마디에, 아예 이마에 손을 갖다 붙이고 걷는 작은애.. ㅋ

얼마쯤 걷다 보니, 그 꽃가루의 주범 중 하나였을 법한 녀석이 등장한다. 정녕 이 녀석 때문이었을까...
딱 한달 전 이 곳은 이런 모습이었다.  

오늘의 민들레들은 샛노란 꽃 대신 하얀 솜털 모양의 홀씨로 남아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민들레 군락이다...


작은 아이는 갑자기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는 웅아범처럼(ㅜㅜ) 민들레 씨앗을 향해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다. (아래 사진 왼쪽 아랫부분에서 뭉개진 꽃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쁜 엄마, 바로 나 때문이다. 줄기를 고이 따서 '훅~'하고 부는 예쁜 그 모습에 심술이라도 났던 건지, "발로 한 번 차 보지, 얼마나 많이 날리나!" 라는 말을 무심코 던지고 만 것이다. 
줄기도 상하지 않고 홀씨를 멀리 퍼뜨릴 수 있는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방법일 진대, 누가 보면 우리 아들 뭔가에 불만이 많은 아이로 보일세라... 얼른 웃으며 말려 보았다. 
하지만 이 아들래미, 웅아범 같은 발길질에 그만 맛을 들이고 말았나 보다. 계속 하고 싶어한다. 

꽃 다친다고 그만 하라는 말에, 돌아서서 "힝!"하고 가는 녀석의 뒷 모습.
토라져 걷는 모습까지도 예쁘니, 
나도 참, 못 말리는 고슴도치 엄마인가 보다.

큰애의 모습이 안 보이죠? 큰애는 벌써 자전거 타고 저만치 앞장 서서 가고 있답니다. 
쌩쌩~ 훨훨~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날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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