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길고 빛나는 강'은 미국 필라델피아 켄징턴의 현재를 조명한다. 약물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 속에서, 사라진 동생을 찾고 있는 언니 미키의 눈을 통해, 한때 찬란했던 도시의 몰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생생히 그려냈다.
길고 빛나는 강, 약물중독에 얽힌 '리즈 무어' 소설
리즈 무어(Liz Moore)의 장편소설 '길고 빛나는 강(Long Bright River) '을 읽었다. 범죄소설이라 하기엔 생각이나 공감을 많이 하게 하는 특이한 책이었다. 어느 순간 이 책을 천천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휙휙 읽고 지나가기에는 구성도 뛰어나고 내용도 재미있고.. 어쩐지 좀 아까웠다.
현재 미국 사회의 난제인 약물중독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수많은 다른 소설이나 영화들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실제로 이런 일들이 만연되고 있은, 실재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구별된다. 또 약물중독에 관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점도 다르다.
작가는 캔징턴 주변 실재하는 도시들을 작품의 공간으로 그대로 가져왔다. 그 도시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작중화자 미키의 시선을 따라, 골목골목 이어지는 길들, 건물들,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약물에 관한 부분도 마치 옆에서 관찰하듯 몰입해 보게 된다. 그 결과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약류의 약물들에 대한 상당한 정보가 쌓이기도 한다.
책의 도입부는, 1891년의 시, <켄징턴, 도시 안의 도시>에서 출발한다. 한때 델라웨어의 영광이었던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켄징턴의 현실은 이제 버려진 땅으로 전락해 있다.
미키는 오늘도 이 거리를 순찰한다. 경찰인 그녀가 매일 하는 일이다. 순찰을 돌며 눈으로는 언제나처럼 동생 케이시를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늘 붙어 다니던 자매, 숫기 없던 언니 미키를 사람들 속으로 이끌던 밝고 쾌활하던 케이시는 어느 순간 꿈도 희망도 사라진 채 약값을 벌기 위해 하룻밤을 맡길 남자를 찾아 길을 헤맨다. 그런 동생의 모습이 길에서 사라졌다. 도시의 한편에서는 케이시처럼 길을 떠도는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대부분 사라져도 찾는 사람 하나 없을 그녀들이다.
전체의 스토리는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각각 '지금'과 '그때'로 명시되어 있어서 시점으로 인해 이야기의 맥이 방해를 받는 일은 없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범인과 서서히 좁혀오는 용의자, 그리고 그가 가까운 그 누군가라는 사실에 대한 적당한 긴장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범인의 실체를 두고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 작품의 주인공 미키의 혼돈과 갈등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건이나 인물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책의 중간 정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야기의 새로운 핵심이 드러나는데도, '대체 뭔데..', '왜 이리 전개가 느린 거야.' 하는 느낌은 그때까지 한 번도 들지 않는다. 장편의 방대한 스토리를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는 증거다.
어린 시절부터 한 방을 쓰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던 자매, 딸을 잃고 졸지에 딸의 아이들을 둘이나 맡아야 했던 가난한 할머니, 애잔한 어린 아들을 최고로 기르고 싶었던 초보 엄마, 불행으로부터 달아나 사이먼에게로 달려가고 싶었던 미키, 그녀가 현실을 외면하려던 순간 약물에 더욱 탐닉한 동생 케이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을 부정하던 시간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차라리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순간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테마, 약물중독 문제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새로 알게 됐다. 특히나 신생아 중독에 관한 부분은 슬펐다. 부모로부터 야기된 금단을 태어나자마자 겪어야 하다니 정말 끔찍하다. 단순히 이야기의 서술뿐 아니라 약물중독에 관한 세세한 정보까지 알게 돼서 새삼 내 주변도 돌아보게 됐다. 수많은 케이시들을 건져줄 뭔가 강력한 예방이 필요할 거라고도 생각하게 된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에서 더이상 자유롭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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