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그친 지 이틀 만에 산책을 나섰다. 영하 16도의 혹한, 20년 만의 추위라니.. 이런 추위에 누가 돌아다닐까 싶지만..눈길은 내게 '지각'이라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처음으로 밟고 싶다면,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해야 한다고.
눈밭에 첫 발자국 남기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났다. 길 끝 모서리까지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못내 서운하던 참에,
앗, 저건 ..
나처럼 눈밭에 첫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호숫가에서 얼음의 두께를 가늠해 보았을까.. 갈까 말까 망설였을까..
여러 번 문지른 발자국이 그곳에 머물었음을 말한다.
언젠가 얼음이 툭 꺼지는 걸 바로 옆에서 본 적이 있는 나는, 이렇게 얼어 있는 호수를 저벅저벅 걸어나갈 수 없다. 그러니 얼음 위를 걸었을 이 사람, "인정!", 그리고 난 아웃. '눈밭에 첫 발자국 남기기'는 실패다.
뉴스에서 누군가 바깥에 둔 물도 얼고 소주도 얼었다고 인터뷰 하던데, 이 호수의 물도 얼어붙고... 그 위로 또 눈이 쌓였다. 다리 밑은 눈보라도 도리가 없었던지 그나마 눈이 쌓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눈은 참 솔직하다. 범인의 자취를 탐색하듯 모든 게 적나라해진다.
아까와는 다른 발자국도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맘껏 밟고 싶었던 이는 사람뿐이 아니었을까.. 종종걸음 치는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났다. 발이 시렸을까, 눈이 내리니 좋아서 그랬을까.. 두 발로 어수선한 그림을 그려놓았다.
능선이 곱게 내비치는 병풍 같은 산자락을 본다. 그리고, '눈밭에 첫 발자국 남기기'는 그만 잊은 채, 멋진 설산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린다. 칼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포기한 건 절대 아니라고, 절대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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