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함이 천성인가, 유유자적 왜가리

연못에서 왜가리를 만났다. 도도하게 서 있는 모습은 백로나 고니 같은 목이 긴 다른 새들과 비슷한데, 유독 왜가리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피하지 않고 여유를 부린다. 느긋함이 천성인 것인지, 몸통만 1미터 되는 새답게 두려울 게 없어서인지 그저 유유자적하는 모습이다.

 

느긋함이 천성인가, 유유자적 왜가리

 

산책길에 들르곤 하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곳에서 간혹 왜가리의 모습을 본다. 그중 작년에 한 번, 올해 한 번, 왜가리를 가까이서 보게 되어 동영상까지 찍었다. 사람이 다가오든 말든, 동영상을 찍든 말든, 왜가리는 잔뜩 여유를 부리며 자기 할 일에 몰두한다. 

 

 

왜가리 2021 - 하남 당정뜰

 

누렇게 시들어가는 연잎을 응시하던 왜가리의 모습에  물고기라도 한 마리 건질 줄 알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 왜가리, 한참을 그저 응시만 한다. 시간은 가고, 왜가리는 그 자리에... 심지어 움직이지도 않게 되자, '인형인데 착각했나?' 하다가,  '아냐, 진짜 왜가리야!' 하다가, 혼자 혼돈스럽기까지 했다.

 

 

왜가리 옆모습과 앞모습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이라 화질이 좋지 않지만, 왜가리의 옆모습과 앞모습을 함께 올려본다. 옆에서 보면 왜가리는 제법 고고함이 느껴지는데, 앞에서 보면 의외로 귀엽다. 두상을 따라 옆쪽으로 길게 이어진 검은색 무늬 때문에 앞에서 보면 꼭 바둑이처럼 보인다. 

 

 

 

왜가리 2020

 

작년에도 왜가리 동영상을 찍었다. 사람만이 왜가리를 관찰할 것 같지만, 이날 사람을 관찰하는 왜가리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지나는 것을 찬찬히도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드디어 내가 다가오는 걸 알아챘다. 왜 '드디어'냐면, 나는 이렇게 큰 새를 정면에서 이렇게 가까이 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부디 이 녀석이 알아채고 도망가길 바랬던 것 같다. 

 

 

산책길에 왜가리

 

일부러 쿵쾅거리며 모션을 크게 하면서 다가가는데, 그런 나를 보고도 녀석은 곁눈질만 하는 것이다. 마치, "왔니?" 하는 것처럼...

 

 

결국 입으로 작은 소리를 내서 녀석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내가 다가왔지만 안심하고 하던 일 하든가, 아니면 딴 데로 가든가... 사실 안심은 나의 몫이기도 했다. 덩치 큰 녀석이 나는 한편으로 두려웠다. 결국 왜가리는 날갯짓을 뽐내며 창공으로 날아갔다.

 

 

 

연못에 비친 가을 산 그림자를 뒤로 당찬 포스로 서 있는 왜가리... 나로 하여금 몇 분을 그 자리에 머물며 동영상을 찍게 한 녀석, 결국 그 동영상은 움직임이 거의 없는 녀석 때문에 잘려나가야 했지만, 덕분에 이 녀석의 습성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듣기로는 꽤나 무서운 포식자인데,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 서두를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서두르지 않아도 될 만큼 배가 부르고, 서두르지 않아도 될 만큼 서두를 필요도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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