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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노란 물결, 노랑어리연꽃

by 비르케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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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덕수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이 노란색이다. 은행잎 지는 가을에 찾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에 그런 아름다운 궁궐이 있어서 가을마다 풍경이 너무 좋았다. 대한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의식이 있어, 형형색색의 복장과 깃발들이 한데 어울려 은행잎 노란 물결 아래를 떠다니기도 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2013년 11월 덕수궁
은행나무 사진찍는 모습
덕수궁 은행나무

 

 

덕수궁 노란 물결, 노랑어리연꽃

 

며칠 전 친구와 함께 덕수궁을 찾았다. 오랜 친구이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다. 그날은 초여름 더위가 막 시작된 날이었다. 날씨가 더우니 궁궐 구경도 잠시, 어느새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원래는 덕수궁 입구에 있는 찻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친구도 금세 가야 해서 연못 옆 등나무 벤치에 앉았다. 

 

등나무 그늘 벤치

 

이 친구랑은 이십 대 어느 날 이런 벤치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내 밥에 반찬을 올려줬던 친구는 이 친구가 유일해서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미소 짓게 할 때가 있다. '뭐 이런 애가 있지, 할머니들처럼...' 하며 의아함 반, 고마움 반으로 친구가 건네주는 반찬을 받기만 했었다. 그때로 돌아가, 이번에는 내가 친구의 밥에 반찬을 올려주고 싶었다. 이런 시국만 아니라면.

 

 

빨갛게 익은 앵두

 

앉아있던 곳 바로 앞에 앵두 같은 게 달려 있다. 점점이 빨간색 열매가 보기에도 앙증맞아 예쁘다. 앵두 같은 건 항상 돈 내고 사 먹는 줄만 아는 도시 촌사람이라, 이게 정확히 앵두 인지도 모르겠고 먹어도 되는지도 모른다. 

 

 

노랑어리연꽃이 핀 덕수궁 연못

더위만 살짝 식히고 친구가 그만 가봐야 해서 일어났다. 아까 들어가려던 찻집이 보인다. 찻집 지나 벤치 쪽으로 갈 때 봤던 연못이 너무 예뻐서 사진이나 찍자고 다시 그 앞에 섰다. 찻집을 배경으로 연못을 보니, 이곳이 월산대군 후손들의 사가였음이 문득 생각났다. 이렇게 예쁜 정원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노랑어리연꽃

노랑어리연꽃이 핀 연못
노랑어리연꽃

 

연못 안에 이렇게 수많은 연잎과 함께, 자세히 보면 노랑색 꽃이 피어있다. 이름이 노랑어리연꽃이라 한다. 연잎이 일부러 빚어놓은 듯 동글동글 너무도 깜찍하다. 검색해보니 중부 이남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6~8월이 개화기라 한다. 

 

덕수궁에 올 때마다 노란 은행잎 물결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여름에 와서도 이렇게 노란 물결을 보게 된다. 이름에도 노랑이 들어간 노랑어리연꽃, 이름도 여리여리 참 예쁘다. 

 

 

서정주 시_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친구 보내는 길에 연꽃을 보니,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섭섭하게, 그러나 조금만 섭섭하게 / 이별이게, 그러나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그렇게 친구를 보냈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고, 만나고 가는 바람... 노랑어리연꽃 만나고 가는 나와 친구의 마음속에도 엊그제 만난 바람이 아닌, 한두 철 전 만났던 그 바람이 지난다. 

 

그리고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전철을 타면서 나는 노래 하나를 떠올렸다.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란 노래다. 친구가 내 밥에 반찬을 얹어줄 때, 그즈음에 듣던 동물원의 노래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난 어떤 열매를 보여주었을까.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
신문을 사려 돌아섰을 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

발 디딜 틈 없는 그곳에서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넌 놀란 모습으로 음~
...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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