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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 산책..

덕수궁 산책

by 비르케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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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일 보러 올라온 친구와 덕수궁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원래는 함께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인근 회사들의 점심시간이 겹치다 보니 식당마다 사람이 넘쳤다. 결국은 간단히 요기만 하고 오랜만에 덕수궁 산책을 하기로 했다. 덕수궁에서 마주 보이는 서울시청 앞은 언제나처럼 차들과 사람으로 활기가 넘친다. 

 

덕수궁 산책

 

서울시청 앞 도로
서울시청 앞

애들이 어렸을 때는 궁궐에도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최근 몇 년간은 올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곳이라 서울시청 신청사도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 한복판은 주로 지하철로만 지나다 보니 지상의 변화에 확실히 늦다. 그래도 옛 건물들이 여전히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고, 도로 중앙에 그 말 많던 서울시 브랜드, 아이 서울 유(I SEOUL U)가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 전경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들어오느라 석조전 앞까지 직진만 해버렸다. 친구도 사진을 찍고, 나도 얼른  한 장을 찍었다. 석조전은 1900년~1910년에 걸쳐 지어진 황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이다. 

 

 

 

덕수궁의 역사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궁궐들이 모두 불타버려서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머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월산대군 후손들의 사가를 고쳐 궁을 조성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고종이 다시 이 궁을 새로운 거처로 선택했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경운궁을 고종이 거처로 택했던 이유는 당시의 시대상과 연관이 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을 겪고 나자 고종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위장까지 한 채 러시아 공관에 몸을 숨긴다(아관파천). 그로부터 일 년간을 한 나라의 왕이 남의 나라 공관에 숨어 있었으니 주변국들의 아귀다툼에 나라 꼴이 점점 말이 아니었다. 이에 환궁에 대한 독립협회의 종용과 전국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1897년 고종은 마침내 환궁을 약속한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처참히 살해된 경복궁 대신 이곳 경운궁을 택했다. 작은 궁궐이다 보니 신변 보호에도 유리하고 다른 나라 공관들도 가까이에 있어서였다. 풍전등화 신세의 조선이었지만, 이름만은 거창하게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나라의 이름이 제국으로 바뀌었으니 '왕'이라는 칭호도 '황제'로 바뀌었고 '광무'라는 새로운 연호도 쓰게 되었다.

 

 

덕수궁 준명당-즉조당-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석어당

왼쪽부터, 준명당과 즉조당이 보이고, 석어당의 처마 끝자락도 보인다. 즉조당과 석어당은 선조가 처음 궁으로 사용할 때부터 있던 건물들인데 중간에 불에 타서 복원되었다. 석조라서 오래 간직될 수 있었던 유럽의 건축물들과 달리, 우리나라 문화재는 이처럼 목조 건축물이 많았기 때문에 전쟁이 한 번 나면 통째로 다 타버려 보존이 힘들었다. 

 

 

석어당 현판

석어당 처마
석어당 창호문
석어당

단청이 없어서 오히려 독특한 멋을 자아내는 이 건물은 안쪽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 중층 전각, 석어당이다. 문을 떼어서 매달아 놓은 모습이 보면 볼수록 참 곱다. 겨울이 되면 매달아 두었던 문들을 다시 내려서 이중으로 추위를 차단하느라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분주했을 것 같다. 

 

경운궁은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군'이란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광해군은 정실 왕후에게서 태어나지 못했다. 그가 세자로 책봉되고 한참 뒤에야 영창대군이 태어났다. 선조도 죽기 전까지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염려했던 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다른 어떤 왕이라도 후환을 남겨두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선조가 죽고 나자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잔악한 방법으로 죽게 하고 그의 어머니인 인목왕후마저 이곳에 가두었다. 이후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인목왕후는 복권이 되어 대비로 추대받는다.

 

덕수궁 중화전
중화전

여느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걷다 보니 덕수궁 정전(正殿)인 중화전이다. 중화전 저 높은 곳에 있었을 고종과 그 앞에 줄지어 늘어선 고관대작들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중화문

중화전을 거쳐 중화문으로 나오니 그새 보초 서는 분들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이분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대한문 월대 재현 공사
대한문 월대 재현 공사중

입장할 때부터 입구가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나오다 보니 공사를 하는 중이다. 공사 펜스에 고종과 순종의 모습이 있다. 명목상 제국의 황제였기 때문에 다른 왕들은 함부로 못 입었던 황색 곤룡포를 입은 고종, 그리고 훈장이 달린 신식 복장 차림의 순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공사는 덕수궁 정문인 이곳 대한문의 월대(건물 앞에 설치하는 기단 형식의 대)를 재현하는 공사라 한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 거행되는 수문장 교대의식도 공사가 끝나는 12월까지는 진행되지 않는다.

 

 

친구 얼굴도 오랜만, 덕수궁도 오랜만... 세월이 흐른 만큼 조금씩 달라져가지만 잠시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서히 변해가는 친구와 나의 얼굴도, 꽃단장하는 덕수궁도,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봐야 더 정겹다. 덕수궁 정문 월대 공사가 다 끝나고 왔더라면 입구에서부터 또 얼마나 낯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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