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압바스)의 수도 정신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벌써 백년 전의 일이다. 그간 수많은 신부님들과 수사, 수녀님들의 희생이 있었고, 본산이었던 덕원(현재 북한의 원산)마저 잃은 채, 결국 수도원은 현재의 경북 칠곡군 왜관에 자리잡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뮌스터슈바르차크 베니딕도 수도원에 가다
얼마 전,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크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에 다녀왔다. 그곳의 신부님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필자의 말에, ‘왜관’이라는 이름부터 떠올렸다. 실은 필자도 몇 년 가톨릭 신자였던 적이 있건만, ‘왜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아마도 뮌스터슈바르차크 수도원의 신부님들과 수사, 수녀님들은, ‘왜관’의 알고 모름에 따라, 한국에서 온 이들을 단순한 관광객과 가톨릭 신자로 구분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베네딕도(각 나라별 발음에 따라 베네딕또, 베네딕트..) 수도회는 6세기 경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세상으로 부터 은둔한 수도자가 아닌,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배우며 일하는 수도자 정신을 가르쳐 준, 이탈리아의 베네딕도(480-547) 압바스(Abbas: 종교적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의 정신에 따라, 수도원 안에는 드넓은 농장이 있고, 수많은 가축이 있는 축사가 있다. 빵도, 축산 가공품도 수도원 안에서 자체 생산된다. 이 많은 수고들이 다 수도자들의 몫이다.
뮌스터슈바르차크 수도원의 역사
뮌스터슈바르차크에 베네딕도 수도원이 설립된 것은 816년의 일이다. 처음에 마리아를 모시던 작은 수녀원이었던 이곳은 1023년 초기 로만틱 바실리카 양식으로 다시 건축되기 시작해, 1066년 축성되었다. 당시 교회에는 세개의 본당이 있고, 하나의 큰 지하납골소와 제단, 강론대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발타자 노이만(Balthasar Neumann/1687-1753)에 의해 설계되어 1743년 9월 8일에 다시 한번 축성되었으나, 그때의 건물은 아쉽게도 1825년 기습공습에 의해 초토화 되고 말았다. 지금 건물은 1935년부터 1938년까지, 3년동안 알베르트 보슬렛(Albert Boßlet) 교수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이다.
본당 내부
본당 내부로 들어가면 제단 중앙에 십자가가 보이고, 그 양쪽으로 원형부조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구약의 상징으로, 양을 제물로 바치는 모습, 오른쪽은 피 흘리지 않는 신약의 제물, 두개의 빵과 하나의 성배이다.(아래 사진 1) 사진에는 없으나, 오른쪽 구석에 마리아상도 있는데, 이는 이곳의 수도자 중 한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이라 한다.
제단이 있는 바로 왼쪽으로는 지하 납골소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그곳에서 압테스 플라치두스 2세(Abtes Placidus Ⅱ/ 1914-1937)의 묘를 만날 수 있었다.(사진 2) 거기서 다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더 내려가면 지하 예배당이 나온다.(사진 4)
한국관
수도원 안에는 세계 여러나라에 자리잡은 베네딕도 수도원에 관한 정보가 마련되어 있는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한국관도 만날 수 있었다. 주로 수도회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사진들과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지금의 한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머나먼 나라의 한 수도원에서 한국을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다.
뮌스터슈바르차크 수도원을 떠나며..
지난 봄 비디오로 찍었던 영상을 캡쳐해둔 사진이 두 장 있다. 영상을 캡처한 거라서 사진이 흐릿하다. 그 장면들속에는 일반인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수도자분들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에는 아주 재미있는 사진도 있다. 바닥에 무언가 새기고 있는 두 아이가 있고,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우셨는지 한 수사님이 아이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는 장면이다.
검은 수도복에서 풍겨지는 서늘한 수도자의 모습 뿐 아니라, 일하고, 춤추고, 어울리고, 어루만지는 인간다움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과 한결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듯했다. 일반인들은 직접 신을 만나기 보다 그러한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간접적으로 신을 만나기 때문이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 정신은, 수도자임에도 오로지 성경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통하는 길을 열어주는 척도가 되라는 아름다운 가르침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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