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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밤이면 고정되는 우리집 텔레비전 채널

by 비르케 2009.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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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15인치 텔레비전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라도 하나 볼라 치면, 그 작은 화면이 위아래로 1/3 정도는 더 잘려나가 원래보다 훨씬 더 작아져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텔레비전으로, 블록버스터(-_-) 영화도 보면서 가끔 아슬아슬 손에 땀을 쥐기도 하지요. 

독일 텔레비전은 많은 방송사들이 저녁 8시 15분을 기해 영화나 드라마를 일제히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영화들이다 보니 재탕에 재탕을 반복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주는 아니더라도 영화가 갑자기 땡기는 날은 저녁 8시 15분에 맞춰 그 작은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곤 하지요. 

8시가 넘어 시작한 영화는 보다보면 10시를 가볍게 넘기곤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평일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다. 다음날이 휴일인 경우에나, 그것도 아주 가끔 보게 되는 거지요. 아이들과 함께 보는 거라서, 우선 재미가 있는지 부터, 애정 표현의 강도나 연령 제한까지, 영화를 보기에 앞서 신경 쓸 일이 몇 가지 됩니다. 덕분에 인터넷으로 그 날 볼 영화에 대한 정보 확인은 이제 필수가 되었습니다. 

아래 있는 사진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 책자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이번 토요일 방송하는 영화 중 이 안내책자에서 추천하는 영화를 보니, '베드 컴퍼니', 쟝르는 '액션 코미디'라고 되어 있네요. 영화를 유료로 다운받을 수도 있게 되어 있구요, 아래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보여지고 있습니다. 더 아래쪽에는 줄거리 부분도 있지만 사진 크기를 고려해 그 부분은 잘라냈습니다. 애정 표현 강도 빨간 점이 하나도 없는 걸로 봐서 이런 류는 애들이 봐도 되겠지요. 재미(익살)에 빨간 점 하나, 액션은 그럭저럭...긴장감도... 고려해 봐야 겠습니다.       



이렇게 영화의 내용까지 가려가며 어쩌다 한 편을 보는 건데도, 가끔 영화 중간에 나오는 대책없는 광고때문에 정말이지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독일 텔레비전은 우리나라와 달리, 영화 도중에 20- 30분 정도마다 광고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 방송에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군요. 광고들 중에는 정말이지 낯뜨거운 장면도 있어서 아이들이 행여라도 이상한 걸 보게 될까 봐, 광고가 시작되면 화장실도 다녀오고, 냉장고 문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아이들과 달리, 저는 늘 텔레비전 앞을 고수하고 앉아 있곤 합니다.  
 
껴안고 부비고 하는 광고들이야, "엄마랑 너랑도 좋아서 껴안잖아, 그거랑 같아, 어른들도 좋으면 저렇게 껴안고 뽀뽀도 하고 그러는 거지."라고 설명하지만, 그 이상의 수위에 도달하게 되는 건 저로서도 감당이 안 됩니다. 특히, 영화 광고들의 애정 표현 수위는, 저에게 이렇게 말 하는 듯 합니다. 
"지금은 애들이 당연히 자야 할 시간이거든!!"  

그나마 제한 연령이 16세인 영화들을 주로 보다 보니, 그런 영화에 이어지는 광고들은 조금 더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을 받기는 합니다만, 어쩌다 한번씩 채널을 돌리기라도 할 때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을 무색케 하는 장면들이 여과없이 보여지곤 해서 저를 당황케 합니다. 

참고로 우리집에 있는 리모컨은 번호로 누르는 기능이 있지만 고장이 난 지 오래라, 채널을 변경하려면 모든 채널을 '올리고 내리는 버튼'만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채널 변경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들은 아이들로서는 가히 충격적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애들과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이, 이제부터는 밤시간에 영화를 보는 경우, 채널을 돌리지 않기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광고만 감독(?)하기도 지치거든요. 

물론 아이들에게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정도의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어떤 거냐구요?
"너희들 키 크고 싶지? 근데 어른들 사랑하는 장면 자주 보면 사춘기가 빨리 와서, 어린이들의 호르몬 대신 어른들의 호르몬이 나와 성장이 멈춘댄다." 
수긍을 하는지, 머릿속으로 벌써부터 '우리 엄마 바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키스 장면만 나와도 미리 짐작하고 딴짓을 하는 걸 보면 일단은 엄마 말이 먹히고는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아이들의 눈을 다 가릴 수는 없겠지요. 길에만 나가도 영화에서 같은 스킨쉽은 흔하디 흔한 독일이니까요. 독일에 사는 이상 저도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기고 있지만,  아이들의 경우 이런 성적인 깨달음은 아주 서서히, 익숙하게 눈에 익어서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어느날 불쑥 튀어나오는 당황스런 정사 장면 등등은 아직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부모로서의 마음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9번과 21번에서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이거나 그저 아주 멋진 주인공이 나오는 액션 영화들인데, 그 채널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채널까지도 지나치며 다 친절하게 갖다 들이대는 저 리모컨을 차라리 교체해 버리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아이들의 호기심마저 없어지지는 않겠지요. 어쩌면 리모컨을 바꾸고 나면 중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미지의 세계처럼 더욱 궁금해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보단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에 제가 함께 앉아서 하나하나 간섭하고, 조언이라도 해 줘야 할 듯 합니다. 최소한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서 저의 이러한 관심을 부담스러워 할 때까지 만이라두요. 애들이 대부분 일찍 자니 망정이지, 독일 텔레비전, 특히 야밤엔 장난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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