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어느 해안가 버려진 창고에 만들어진 작은 커피하우스 요다카.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를 아버지를 기다리며 온 마음을 담아 커피콩을 로스팅하고 커피를 만드는 미사키... 대만의 치앙 시우청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 <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 이야기를 할까 한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미사키에게 어느 날 변호사가 찾아온다. 아버지가 사라진 지 8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법적인 정리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빚이 있었다. 실종이든 사망이든 가족이 있으면 고인의 재산이나 빚이 자동으로 상속되므로 변호사가 이를 알렸던 것인데, 선뜻 그 빚을 갚겠다는 미사키... 이 말에 변호사는 적잖이 놀란다. 상속을 거부하면 남은 가족이 빚을 탕감할 이유가 없는데 굳이 갚겠다고 해서다. 대신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에 대해 그는 전한다. 바닷가에 배를 두는 작은 창고였다.
결별한 부모로 인해 아버지와 오래 떨어져 살아서 그가 그리웠을까, 어느 날 8년간 실종 상태이라는 갑작스러운 아버지 소식과 함께, 그렇게 램프 불 켜진 어두침침한 작은 창고, 그리고 말없이 기타를 치던 아버지의 공간 속으로 미사키가 들어오게 된다.
대충 지어진,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작은 창고, 문도 삐그덕거리고 생선 비린내가 진동할 것만 같은 이곳에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너저분한 물건들 속에는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기타가 버려져 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나가사쿠 히로미, 그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다.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배우고 싶어 진다. 젊은 시절 모습만 보다가 이 영화를 보니 새삼 세월의 연륜이 묻어난다.
돈 벌러 며칠씩 떠났다가 맘 내킬 때 한 번씩 들르는 엄마 에리코를 기다리며 창문에 매달려 있던 남매가 미사키의 등장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아리사의 집은 원래 민박집이었는데 지금은 가정집으로 사용 중이다. 창문으로 펼쳐진 경치가 정말 끝내준다. 아리사의 집에서는 미사키의 창고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미사키는 창고를 개조해 이곳에서 커피를 볶는다. 이렇게 볶은 커피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엄마 정에 굶주린 윗집 아이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의 엄마 에리코는 아이들이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이 불쾌한 듯하다. 어쩌면 자신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음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이 신경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리코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둘이나 낳아버렸다. 두 아이를 책임지기에는 그녀 스스로가 아직 어리다. 남자들과 어울려 번 돈으로 입에 풀칠하는 일이 그녀로서도 상당히 버거워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집에 남자도 데려온다. 아리사는 이렇게 철없는 엄마에게 차마 학교에서 내라는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못 한다.
학교에 낼 돈은커녕 생활비마저 부족한 아리사.. 당돌하게도 미사키에게 돈을 빌리고자 한다. 미사키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아리사로 하여금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 일을 할 수 있도록 커피를 가르치고, 자신의 커피에 라벨을 붙이는 일 등을 맡긴다. 미사키가 아리사를 가르칠 때 수많은 커피의 종류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온다.
에리코는 미사키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 하지만, 자신이 데려온 남자가 미사키를 폭행하려 한 사건 이후로 너무도 미안한 나머지 미사코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에리코 또한 그녀의 딸 아리사처럼 미사키에게서 커피를 배운다. "천천히 안에서 밖으로 원을 그리듯...", 미사키가 가르쳐주는 대로 커피에 따뜻한 물을 부어주고 스톱, 부어주고 스톱... 그렇게 맛이 좋은 커피를 만들어낸다.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커피가 좋다고 말하는 미사키, 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커피를 만들었다. 어쩌면 돌아올 수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요다카에서의 그녀의 시간도 서서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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