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들이 말한다.
"갑자기 물건 가격이 엄청 올랐어요."
해가 바뀌고 모두가 예상하던 당연한 귀결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것저것 안 오른 게 없다.
돈을 많이 풀었으니 물가가 오르는 건 당연지사다.
안 오른 게 없는 물가, 돈 풀기는 그만.
편의점도 다른 가게와 마찬가지로 단골이 있다.
그들 중에는 거의 일정한 시각에 같은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카드를 쓸 것 같아도 아직 현금만 쓰는 사람도 많다.
만 원짜리 한 장 가져와 소주랑 안주거리를 사고 잔돈을 받아가던 손님이 있었다.
여느 날처럼 만원을 내밀던 손님은 몇 백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혼자 투덜거리다가 화도 좀 내다가... 그렇게 가더니 더는 안 온다는 것이다.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나름의 소확행을 누리던 그 손님의 루틴은 잠시 침범당했지만 습관이란 건 생각보다 무섭다. 시간이 지나 만원의 힘이 거기까지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 손님도 다시 편의점을 찾게 될 것이다.
잘못된 화폐정책이 초래한 조선시대 인플레이션
조선시대에도 인플레이션은 존재했다. 흥선대원군의 실책 중 하나인 당백전 발행이다. 당백(當百), 즉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의 100배에 달하는 동전을 임의로 찍어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재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이 세 궁궐이 있었는데, 전쟁 중에 세 곳이 모두 화마를 입었다. 왕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살 길을 찾아 나선 백성들에 의해 약탈과 방화가 이뤄진 것이다. 피란에서 돌아온 선조는 경복궁을 재건하려 하였으나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결국 끝까지 추진하지 못했고, 경복궁은 그 이후로 오랜 세월 방치된 채 남게 된다.
고종에 이르러 대원군이 나서서 경복궁 중건을 강행했다. 오랜 세월 조정을 쥐락펴락하던 안동김씨 풍양조씨 등 외척세력을 물리치고 정권을 잡은 대원군이었기에, 강력한 왕권의 상징인 정궁 경복궁 중건에 집착했다. 그러나 60여 년이나 이어져온 세도정치로 인해 가뜩이나 삼정이 문란해져 있는 상황에 경복궁 중건은 또 하나의 가혹한 정책이었다.
경복궁 중건의 위업은 꼭 달성해야겠고 돈은 부족하니 원납전이라는 이름으로 기부금을 강요했고 당백전을 발행해 공사대금을 지불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당백전은 시중에서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 액수가 너무 큰 화폐였다. 더군다나 조정에서도 조세 수납에 당백전은 받지 않게 되면서 백성들에게 당백전은 신뢰할 수 없는 화폐로 자리 잡았다.
명목가치(액면가)는 100 배지만 실질가치는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불일치가 일어났고, 그나마 당백전을 받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결국 당백전은 반년만에 회수에 들어갔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만 남게 된다.
고액권을 쉽사리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백전 사례에서 보듯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사용하지 않는 1원 단위가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잘못된 화폐정책으로 인한 폐단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지나가기가 쉽지 않다.
무제한 양적완화 그 이후
흔히 '천문학적 양적완화'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지난 2년간의 돈 풀기(무제한 양적완화, 무제한 국채 발행) 대신, 올해는 '돈줄 죄기' 소식을 더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이른바 '양적긴축(테이퍼링)'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에 있어 달러를 쓰는 나라도 답이 없는데, 기축통화가 아닌 우리나라 화폐의 미래는 더 불투명하기만 하다. 달러와 다른 점이, 달러는 풀어도 풀어도 지구촌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지만 원화는 풀면 국내에서만 돈다는 점이다. 그만큼 유동성 축소가 쉽지 않다.
돈줄 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몫일뿐 일반인들은 추측만 할 뿐이다. 30년 만의 부의 확장이 일어났다는 시대를 살지만, 부의 확장은 일부에게만 일어난 반면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는 모두가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새해 벽두부터 일제히 물가가 오르고 달러 대비 원화는 달러당 1,200원을 뚫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경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가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대처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때가 지금인 것 같다. 오랜 양적완화에도 버틸만한 힘을 주던 주체들이 이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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