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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 아름다운 밤의 정취

by 비르케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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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에 놀러 갔다가 한탄강 중류에서 배를 탔다.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타게 됐는데, 배를 타고 지나며 문득 주쯔칭(주자청,朱自淸)의 수필 '야경에 노 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가 떠올랐다. 밤에 배를 타고 진회하를 돌며 느낀 감회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 아름다운 밤의 정취

옛사람의 정서를 책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는 법, 배를 타고 강을 표류하며 주쯔칭의 '야경에 노 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를 떠올리게 됐다. 작품 속의 공간과는 달리, 뱃사공이 노를 저어 가는 배 대신 모터 달린 통통배를 탄 채, 일몰 무렵의 강을 보고 있으면서도 머리는 밤의 정취로 가득 찼다. 

 

주쯔칭의 수필 속 작은배처럼, 칠흑 같은 어둠을 향해 어디론가 계속 나아갈 것만 같은 느낌, 점차 짙어져 가는 어둠 속에 등을 매달고 계속 나아가다 보면, 화려한 불빛이 너울거리는 아름다운 도시의 밤 속으로 다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 이 작품은 주쯔칭의 자전적 일화를 기록한 수필집에 묶여 있다. 친구와 함께 뱃놀이 갔던 날에 대한 기록이다. 교교한 달빛이 떠오를 무렵 사공이 노 젓는 작은 배에 올라, 두 사람은 진회하를 향해 나아간다. '진회하'는 난징에 있는 강으로, 뱃놀이를 하거나 난징의 가옥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어두운 밤 불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야경과, 진회하에 비치는 등불의 아롱거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같은 진회하 안에서도, 이제까지 배가 지나온 곳은 쪽은 어둠인데 다른 한쪽은 번화함으로 빛난다. 지금처럼 또렷한 등불이 아닌, 어슴푸레하고 몽롱한 느낌을 주는 등불들이 매달려 주변의 밤 풍경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대중교'라는 다리에 이르러 두 사람이 탄 배에 다른 배가 다가온다. 노래 불러주는 기생이 탄 배다. 두 사람 모두 단호하게 뿌리치고 마는데, 그런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그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화자... 기생이 탄 배가 멀어지고, 이제 생각을 떨굴 때도 되었건만, 또 다른 기생이 탄 배가 옆을 스쳐간다.

 

 

기생이 타고 있는 배가 스쳐갈 때 듣게 된 노랫가락이 뇌리를 점령한다. 짧은 순간 넋을 잃게 만들어버린 노랫소리가 사라지고 야경 그림자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되돌아오는 배 안에서 화자는 고독을 느낀다.

 

 

▼ 줄거리 정리

진회하에 뱃놀이 온 두 남자, 야경에 도취해 있던 그때 기녀의 배가 다가온다. 노래를 불러주는 기녀다. 기녀를 곁에 두는 건 절대 안 된다 생각하며 연신 거절하던 그들, 친구는 아예 기녀를 바라보는 것도 죄인 듯 고개마저 외면하고 손사래를 친다. 또 다른 기녀들의 배가 다가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노노.

 

그러다가 차츰 자신들의 행동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정말로 기녀가 싫어서인지, 아니면 위선을 행사한 것인지...

 

그때 다른 기녀의 배가 곁을 지나고, 잠시 스쳐가며 그녀의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듣는다. 짧은 순간임에도 넋이 나갈 것 같은 아름다운 노래 한 소절에 멍해 있다 보니 배는 어느새 진회하의 가장 빛나는 장소로부터 멀어져 어둠 속으로 나온다.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한다. 멀리서 기녀들의 노랫가락을 들었을 때는 가까이에서 귀를 바짝 대고 듣고 싶은 갈망에 빠졌으면서도, 그런 동경이 실제로 다가온 순간 그 기회를 외면해 버렸으니...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뒤로하고 뭍을 향한다.

 

 

해가 질 무렵 배를 타고 가며 이 수필이 떠올랐던 이유는, 옛날에는 그 물길을 그렇게도 다녔겠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수필에서처럼 화려한 야경은 아니겠지만, 그런 노랫가락으로, 악기 소리로 채워졌을 것이라 상상해 보았다. 배를 탔던 철원의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정자를 만들어놓고 놀던 곳이었다 하니 그런 상상도 아예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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