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읽었던 책들이 간혹 생각날 때가 있다. 요즘처럼 스산한 밤에 밤길을 걷게 될 때 문득 떠오르는 책,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 밤을 꼬박 함께 걸어본다면, 다가갈 수 없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밤길을 묵묵히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이 가능하다.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밤새 걷는 동안..
온다 리쿠(恩田陸)의 소설, 밤의 피크닉은 어느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전통인 야간보행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 년마다 행해지는 이 행사에서는 전교생이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24시간 동안 80킬로미터를 걷는다.
고다 다카코는 그 밤, 니시와키 도오루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둘은 이복남매지간으로, 둘 다 3학년이라서 이번이 그들의 마지막 보행제다. 같은 아버지를 두고 한 해 동시에 다른 엄마에게서 태어난 그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어본 적 없는 몹시도 불편한 사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정말로 영영 말 한마디 없이 멀어질지도 모른다.
줄거리를 말하기 불편한 게, 이 소설을 직접 읽는 것과 줄거리만 듣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줄거리라고는 그들의 보행제 24시간 동안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2002년 '쇼세츠신초(小説新潮)에 연재를 시작해 2004년 발간되었다. 이 작품으로 온다 리쿠는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밤길을 걸으며 느끼던 처음의 고양감도 사라지고, 왁자지껄함도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자신의 발밑에 의식을 집중시킨다.
각자의 마음속에 묻어둔 것들이 너무도 커져서 서로의 간극을 일순간에 좁히게 되는, 그런 경험을 어린 시절엔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을 터놓고 울음을 터트려버리기도 하고.. 지금은 그럴 일도 없지만, 그렇기에 시간이 흘러 이런 소설을 읽던 때의 감흥이 더욱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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