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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왓슨이 홈즈의 조수라고?!

by 비르케 202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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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절현의 고사에서, 종자기는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마음을 읽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종자기가 죽게 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다.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줄 사람이 더는 이 세상에 없음을 한탄해서였다.

 

셜록 홈즈의 친한 친구이자, 베이커가에서 함께 하숙했던 왓슨 또한 홈즈에게는 지음이 아닐 수 없다. 의사라는 본업이 있음에도, 왓슨은 홈즈의 일이라면 무조건 앞장을 서곤 한다. 의사라서 일까, 왓슨은 홈즈의 사건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 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오늘날 이공계열에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쉽다고 하는데, 홈즈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왓슨의 세세한 기술이 홈즈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왓슨은 이른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글 잘 쓰는 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책에는 왓슨이 홈즈의 조수로 소개되기도 하니, 왓슨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홈즈에 의해서가 아니라 왓슨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이 소설의 작가인 코난 도일의 치밀한 의도에 따른 것인데, 가끔 누가 보더라도 왓슨이 홈즈의 조수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긴 하다.

 

홈즈와 함께 베이커가에서 하숙을 할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베이커가를 벗어나 결혼도 하고 의사로 개업을 하고 나서도 홈즈의 부름에 기꺼이 달려오는 왓슨을 보면, 개인적 관심사는 차치하고라도 그를 찾아온 환자들은 어찌하고 자꾸 딴 데 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어가는 탐정

왓슨으로서 가장 열 받을 만한 홈즈의 호출은 <죽어가는 탐정>에서가 아닐까 싶다. 병에 걸린 홈즈가 사흘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시름시름하자 하숙집 주인인 허드슨 부인이 직접 왓슨의 병원을 찾아 사태의 심각성을 토로한다. 왓슨이 의사로서 셜록 홈즈의 집에 왕진을 오게 되는데, 홈즈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평소보다 더 괴팍한 홈즈의 고함과 마주한다. 

 

"가까이 오지 마!"

"안 돼!"

"만지지 마!"

 

홈즈는 자신이 수마트라의 풍토병인 쿨리병에 걸려서 이제 곧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왓슨은 의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홈즈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홈즈는 오히려 더 거부하며 다른 의사를 데려와 달라, 동양의 병을 잘 아는 의사가 필요하다면서 왓슨의 자존심까지 건드린다. 그리고는 갑자기 달려들어 문을 잠가버린 후, 6시까지 두 시간 정도 자신의 방에 함께 머물러줄 것을 강요한다. 안에서 잠기는 열쇠로 문을 잠근 후 열쇠를 자신이 가져가 버렸으니 강요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홈즈의 하는 양을 그대로 보고만 있는 왓슨은 정말 대인배 같다. 따꺼도 이런 따꺼가 없다. 그래도 나름 잘 나가는 개업의인데, 극의 후반에는 홈즈의 침대 뒤에 숨어서 이야기를 엿듣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엿들어야 하므로 찍소리도 내면 안 되는 상황, 기침이라도 나오면 일이 완전히 틀어져버리는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 내던져지는 왓슨이다.

 

 

6시가 되자, 왓슨은 쿨리병 전문가 스미스를 데려다 달라는 홈즈의 부탁을 받고 베이커가를 나선다. 그때, 집 앞에서 런던 경시청 모턴 경감과 마주친다. 경감은 홈즈 상태가 어떤지 물은 후, 좋지 않다는 왓슨의 말에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린다. 이 부분에서는 홈즈가 너무 유명하다 보니 경찰이 그를 견제하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홈즈가 사라지길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그건 아니었다. 

 

드디어 쿨리병의 전문가인 스미스 씨가 홈즈를 찾아왔다. 그와 홈즈의 마지막 힘 겨루기가 이어지고, 앞서 설명했다시피 이 모든 상황을 왓슨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상황이 종결되고, 모든 것이 셜록 홈즈와 모턴 경감의 작전이었음을 알게 되는 왓슨이지만 그럼에도 별 반응이 없다. 처음 홈즈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죽게 되면 주인을 잃게 될 그의 물건들 - 담배쌈지, 주사기, 주머니칼, 리볼버의 탄약통,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파이프 - 을 보며 서글퍼하던 인정 많은 왓슨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도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슨 식당에나 가세나."

 

사흘이나 굶어서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러 가야겠다며 접시에 있던 마지막 비스켓마저 자신의 입에 몽땅 털어 넣는 홈즈 뒤로, 죽을지 모르는 친구를 위해 오후 내내 동분서주하느라 마찬가지로 식사를 걸렀을 왓슨이 잠자코 그의 외투 걸치는 일을 돕는다.

 

심슨 식당에 가게 되더라도 홈즈를 위해 선뜻 결제까지 해줄 것 같은 착한 왓슨이라, 어떤 사람들은 너무도 평면적인 왓슨의 존재를 끔찍해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왓슨은 홈즈의 사건들 자체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홈즈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주요 인물이라는 점과 작가인 코난 도일에 의해 다각도로 계산하에 설정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작품들을 더 보고 나서 다음번에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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