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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제 머리 깎은 날

by 비르케 2009.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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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애들의 머리를 깎아주기 시작한 게 햇수로 몇 년이 되다 보니,
머리에 이발기계를 댈 때마다 떨리곤 하던 손 대신,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쓱쓱 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다 제법 자란 내 머리에 까지 손을 대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지 못해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준 다음
내 머리카락을 잘랐다. 중도 못 깍는다는 제 머리...
솔직히 스님들 머리야 그대로 밀기만 하면 되는 것이거늘, 
그도 못 한다는 '자기 머리 깎기'를 하는 내내, 머리 깎기 보다 더 힘들었던 건 엉뚱하게도,  
너무 작아 내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작은 손거울 때문이었다.

내가 남자라면야 불가능 했겠지만, 
단발머리로 자르는 일 정도는 '알아주지 않는 사이비 미용사' 몇 년 만에 익힌 손놀림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진으로 올릴 수 있다면야 오죽 좋을까 마는, 
그렇잖아도 너무 솔직하게 글로 표현하는 습성때문에 모습 정도는 그늘에 가리는 편이 더...

바람에 나부끼는 짧은 머리카락의 감촉이 참 좋다. 
오늘만은 나도 미용사 같다. 아니, 조형예술가 같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처럼 미용기술을 따로 배우지 않고 바리깡을 든 사람은 
사람마다 다른 뒤통수에 주목해야 하고, 긴장해야 하고,
또 감각만으로 그 형태를 따라 조각을 하듯 깎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머리를 깎지만, 
한 아이는 머리카락이 앞으로 쏟아지고, 또 한 아이는 양 옆쪽에 뭉텅이로 몰려 나있다. 
눈으로 보아선 거의 알 수가 없다. 만져 보아야 하고, 느껴야 하고, 그 부분을 자를 때는 특히나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에 떠벅떠벅 가위 지나간 자리를 남긴다거나, 아니면 머리털이 우뚝우뚝 선다.

내 모습 대신 두 아이 중 한 명의 뒷모습을 올린다. 
두 아이중 어떤 아이인지는 상상에 맡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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