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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모빙(mobbing)

by 비르케 200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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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왕따'에 관한 이야기가 살짝 나온 김에 따로 소재로 한번 잡아 보았다.

독일에서도 '왕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얼마 전 총기난사로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17세 소년의 이야기도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처음에 그 원인을 두고 '왕따 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지기도 했었다.   
(관련글: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어느 학생의 살인광란(Amoklauf eines Schülers mit 16 Toten))

'왕따'를 지칭하는 독일어 단어는 영어에서 따온 'Mobbing'이다.
이는 집단에서 한 사람을 두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지칭한다.

언젠가, 비가 몹시도 내리던 어느 추운 날,
버스 정류장 한 쪽, 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핸드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에게 한참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모함했다, 자기는 억울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녀의 하소연이 길어지더니, 이내 표현이 적나라해 진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어, 죽여버리고 싶어."하더니만,
"크리스티네만 빼고..."라고 말한다.

그 심각한 상황에서 '크리스티네만 뺀다'는 말이 그녀의 담배연기처럼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전화를 받는 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마 이 도시 사람은 아니기에, '쓸어버리지 않을 부류'에 '크리스티네'라는 여자 하나만 넣었을 뿐,
자신의 하소연을 받아주고 있는 상대방의 이름은 들먹이지 않았을 터였다. 

"그녀는 너무 친절해. 나를 항상 위로해 주지."
이제껏 역정을 내고 있던 목소리에 갑자기 다정함이 깃들었다.
아, 나도 갑자기 그 이름밖에 모르는 '크리스티네'라는 여자를 한번 보고 싶었다.
드디어 버스가 오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그날,
이 도시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다던 그녀와

그녀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이 도시 사람들 중 일부는 한 버스를 타고 시내를 향했다. 
그녀처럼, '세상을 다 쓸어버리고 싶은' 사람들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을 한 공간에 있게 되는 것인지
...


바로 며칠 전에 그녀를 버스안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러나 곧 누군가가 버스에 올랐고,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도는가 싶더니, 주절주절 상대방과 한참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순간 혼자 생각하기를,
'저 여자가 크리스티네일까?'

을씨년스런 날씨속에 하늘의 빗물만큼이나 서러운 눈물을 쏟던 그녀가 
한 사람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다른 사람과도 같은 얼굴이 되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
울먹이던 그 여자에게 있어 '크리스티네'와 같은, 그런 존재가 한 명만 있어도

삶은 어찌어찌 여의하게 굴러간다.

그러나 설령 그런 존재 하나 없이 철저하게 왕따가 되더라도 너무 괴로워 하지 말자.  
가끔 왕따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 외부에 있는 이유로,
자신만의 세계에 더 몰두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제공받는다. 
아이들의 경우라면, 차세대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스필버그'가 나올 법도 하다.  
이에 따르는 문제는 '과연 어디에 심취했느냐'가 되겠지만...

이번에 독일에서 벌어진 '아목(Amok)'의 이면에는 
다른 아이들과 섞이지 못 하고, 자신만의 세계인 '킬러게임'에 너무도 심취했던 한 소년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격을 즐겼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아목(Amok)'은 원래 말레이어 '아모그(amog)'에서 유래한 단어로,
'공격적인 살상욕을 동반한 정신착란'을 이르는 말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인명 살상'의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이 더 각박해 지고 살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어딘가 기댈 곳이 있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그럭저럭 또 살아간다.
단 한 명의 '크리스티네'든, 마음 붙일 그 어떤 것이 곁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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