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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즐거운 수학, 하지만 난감한 업그레이드

by 비르케 2009.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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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은 둘 다 수학을 좋아한다. 가끔은 심심하다고 수학 문제를 내달라고 조를 정도이다.
큰애 세오는 대부분 첫애들이 그렇듯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나의 손길이 어느 정도는 갔다. 그러나 작은애의 경우에는 그렇게 끼고 뭘 가르쳐 본 적이 없는데도, 형이 좋아하는 영역은 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수학 역시도 재미있어 보였던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라도 스스로 문제를 내고 풀고를 반복해 온 터였다.

그다지 수학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어느날 숙제를 보니 곱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겨우 1학년이 곱하기를 하고 있기에 너무 의아해 어찌된 일인지 물었더니, 선생님이 자꾸 어려운 걸 내준다는 것이다.

사실 방과후에 독일어도 더 익힐겸, 선생님의 권유로 '숙제 도우미 수업'을 따로 받고 있기에, 집에 와서 숙제를 하는 경우는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이므로, 곱하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가 한참이나 되었다는 데도 그때까지 전혀 알지도 못 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 전 일인데, 오늘 보니 유노는 또 숙제로 나누기를 하고 있다. 선생님이 곱하기에 이어, 오늘은 처음으로 나누기를 숙제로 내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곱하기, 나누기의 수준이지, 곱셈, 나눗셈이라 부를 법한 복잡한 것들은 분명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일학년, 그것도 저리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나누기'라...

아직 독일어에 서툴어서 개념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 하고 그저 선생님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유노다. 어렵다거나, 그냥 하던 대로 곱하기 더 하다가 나누기는 나중에 하겠다는 등등의 말들을 표현하지 못 하는 녀석이다 보니, 주는 대로 낼름 문제를 받아드는 유노를 보며 선생님의 기대치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나누기 숙제를 하는 내내 한숨을 내쉬며 어려워 하는 동생이
안쓰러웠던지 옆에 있던 세오가 도와주려고 나선다. 나는 얼른 그런 세오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 

"가르쳐 주지 마라, 이거 잘 하면 더 어려운 걸로 넘어가는 거야. 네 동생 쓰러지는 거 안 보려면 내버려 둬!"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틀린 답이 있음에도 나는 관여치 않는다. (독일에서는 : 이 나눗셈부호이다. 곱셈부호는 · 으로 표시한다.) 
유노의 학습진도에 관한 판단은 전적으로 선생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어렵다는데도 도와줄 수도 없는 세오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비실비실 동생이 쓰는 답을 건네다 보며 웃고 있다. 그런 형에게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지, 벌건 얼굴이 되어 대뜸 손으로 숙제를 가려버리는 유노... 
음... 수학 좋아하는 녀석에게도 거듭된 업그레이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인가 보다. 

`관련글: 세오, 학교에서..
            교과서 빌려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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