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카페에 중고로 올라온 퀼트 책을 얼떨결에 업어오고야 말았다. 집안 한쪽에 잠자고 있는 해묵은 원단들에 봄의 숨결을 불어넣고 싶은 열망이 나도 모르게 발동해 책을 올린 사람에게 챗을 걸었고, 몇 마디 나누다가 불쑥, '제가 살게요!' 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이 책들은 나의 것이 되었고, 나는 이제 스스로가 낸 숙제를 위해 가끔 바늘도 손에 쥐게 되었다.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바느질 또는 재봉 관련된 것들을 볼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학교에서 스티치를 하나씩 배우던 때, 또는 수틀을 앞에 두고 수놓기 숙제를 하던 때도 생각나고, 수년 전 옷을 만들겠다고 재봉틀을 끼고 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간 듯 느껴지기도 해서 기분이 오묘하다.
"보이세요?"
퀼트는 처음이라는 내게, 책을 판 분이 아플리케나 패치워크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생각코 알려주다가 갑자기 던진 질문이다. 그때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책 내용을 훑던 참이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했는데, 그분은 10년 넘게 하던 걸 눈 때문에 이제 접는 중이라 한다. 허물없이 나이까지 서로 공개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나보다 오히려 네 살이나 적다. 아직은 괜찮다고 했더니, 그런 내가 무척 놀랍다는 반응이다.
학창시절 내내 고도근시로 오랜 시간 안경을 꼈지만, 그만큼의 보상처럼, 내게 노안만큼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늦게 오는 듯하다 (근시면 원래 노안이 더 늦게 온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는...). 지금은 라식을 통해 안경이 주는 불편함도 벗어버린 상태인데, 라식때문엔지 또 야간 운전시 눈부심은 좀 있다.
책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세월 해오던 일을 서서히 접어야 하는 맘은 과연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접는다고 해서 아예 그 일을 못 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게 뭔가를 접는 시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새로 시작하기도 하고 그 일이 주는 즐거움을 새로 알아가기도 한다.
이제야 퀼트를 시작해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더 늦었더라면 그나마 시작도 못 했을 뻔 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 바로 이 시간이 퀼트를 시작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이다.
퀼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도 아니고, 다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취미들을 좀더 다양하게 갖고 싶을 뿐인데, 재봉을 하던 시절부터 오랜 시간 잠만 자고 있던 나의 원단들은 과연 언제나 다 빛을 보게 될지... 퀼트 책들을 책장에 들이고 보니 그나마 마음만큼은 많이 든든해진다. 참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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