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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노인 실종 사건, 노년에 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소설

by 비르케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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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한 생각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아직 겪어보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노인들의 생활관리사로서 가장 솔직한 목소리로 쓴 소설이 있어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비춰, 생의 마지막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황노인 실종 사건, 노년에 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소설

'황노인 실종 사건'의 작가 최현숙은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구술생애사로 일하고 있다. 작가의 남다른 이력은 소설 속 화자인 '미경'에 그대로 투사된다. 미경은 노인들의 생활관리사로,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거나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맡고 있다. 또한 구술생애사로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만드는 일도 담당하고 있다.

 

황노인 실종사건
황노인 실종사건

제목처럼, 황노인의 실종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황노인은 미경에게 새벽에 전화 한 통을 걸었고, 그녀가 받지 않자 문자 한 통을 남긴 채 사라졌다. 정작 문자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미경 자신이었다. 미경은 그것이 죽음에 대한 암시일 수 있음을 직감하지만, 꼭 그 경우가 아니더라도 모든 경우가 최악이 될 수 있음을 안다.

 

 

노인들의 사연들을 열거하기도 하고, 구술생애사로서 그 이야기를 글로 받아 적기도 하면서, 대화체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소설 중에서도 이런 류의 글의 형식은 뭐라 해야 하나, 마치 사건 취재 방송을 보고 있는 듯 구석구석을 사실적으로 두루 다루는데 딱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책 뒷면에 정답처럼 이 글의 장르를 평론가 한 분이 정의해 두었다. '르포문학', 맞다, "현장르포" 방송에서의 딱 그 느낌이다. 

 

 

 

내용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이 책은 노년에 관한 다른 책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더 솔직하고 신랄하다. 독거노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고립사에 해당되면 누군가는 책임질 일이 더 많아진다. 미경은 관련 교육을 들을 때마다 괴로움을 느낀다. 고령사회의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노인이 안 죽어 문제'인 것만 같은데, '죽는 건 필요하지만 산 사람 보기 좋게 죽어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정말 충격적인 표현이면서도 현실적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소설의 제목에는 '황노인'으로 되어 있지만, 미경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노인들을 모두 실제 이름으로 표현한다. 황노인은 '황문자'다. 어떤 면에서는 노인도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 불릴 때 가장 인간답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다른 느낌도 공존한다. 공경이나 존중은 아예 사라지는 느낌... 늙고 병들고 가난한 노년은 그런 것인가.. 실제 현실이 그러하기에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부분일 수도 있다. 또한 여러 인물들에 대해 존칭을 붙인다거나, 김노인 이노인, 박노인.. 이렇게 명명할 수도 없으니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것 같긴 하다. 

 

 

노인들이 오래 살아서 문제라면서, 노인자살이 문제라고도 하는 이중적 시선이 이해되지 않는 황노인

 

황노인의 생애구술도 미경에 의해 글로 표현된다. 황노인의 화법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맞는 말, 공감가는 말도 많지만, 긴 대화체가 버겁긴 하다. 작은 일상을 모두 말로써 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랄까,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나오는 대사에 숨이 넘어갈 듯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이 생활관리사나 요양보호사 등 현장에서 노인들을 실제로 접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며, 고충의 영역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주려면 듣는 주체도 연배가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릎은 괜찮으시냐'는 미경의 말에, 황노인이 웃으며 답한다. "톱으로 쓱쓱 썰어가지구는 수돗물 쫘악 틀어서 쐬수세미로 싹싹 씻어버리면 좀 시원할 것 같아." 표현이 적나라하지만, 그 느낌 언젠가는 모두가 순차적으로 알게 될 것이기에 뜨끔하다. 아프고 아프고 아파서 황노인이 웃는다. 깔깔 웃는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거 아까워 하면서 어린 자식들 입에는 맛난거, 이쁜거만 넣어주고 싶은 마음,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리 종종거렸지만 젊었기에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스토리 라인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왜 황노인이 아리송한 문자를 남기고 떠났는지, 어떤 이유로 어디로 갔는지는 글의 후반부에 명확하게 정리가 된다. 줄거리보다는 노인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라 직접 읽어보고 생각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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