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약속의 공간이 되어주고, 조무래기들이 타고 오르면서 웬만한 사연 몇 가지쯤은 품을 줄도 알게 되었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사람들은 서로 어우르고, 누군가는 철이 들어가고, 또 누군가는 사랑도 속삭였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동안, 사람은 떠나가고 지명은 때때로 바뀌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느티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에 불이 붙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에 그 한 그루는 그만 소실되고 말았다. 남은 느티나무는 슬펐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사람들은 홀로 남게 된 느티나무에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일에만 들떠 흥분해 있었다.
주변이 온통 공원으로 바뀌고 날마다 아파트들이 쑥쑥 올라갔다. 휑한 흙 벌판에는 알 수 없는 자잘한 나무들이 다시 심어졌다. 그러는 동안 느티나무는 계속 늙고 쇠약해져 갔다. 마르고 약한 가지에 아이들이 마구 매달렸다. 아이들 따라 어른도 가끔 매달렸다(사진- 3년 전 느티나무 모습).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느티나무가 노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느티나무를 보호해야 한다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신도시를 만드는 데만 열광하던 사람들이 그즈음 이 새로운 도시의 근원을 찾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 보였다. 느티나무의 생일을 1600년이라 추측하기도 하고, 이 마을의 유래도 조사해 돌에 새겨 넣었다. 자신이 400년이나 묵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처음 알았지만,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느티나무도 나름 할 말이 많았다.
1600 느티나무 탄생
1793 정조 17년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
1895 조선 고종 32년 남양군, 수원군으로 개편
1914 남양군과 수원군을 수원군으로 통합
1914 동북면과 어탄면을 통합하여 동탄면 생김, 반송리 석우리 등 13개 리로 구성
1949 화성군으로 개편, 수원읍은 시로 승격 분리
......
그러던 어느 날, 쓸쓸한 느티나무에게 드디어 새로운 느티나무 친구가 생겼다. 짝을 잃은 느티나무의 사연을 사람들이 안타까이 여겨 새 느티나무를 심기로 결정한 것이다.
청계리 느티나무는 원래 2그루가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1그루가 소실되어 현재에 이른다
앞으로 400년의 미래를 위해 소실된 느티나무의 흔적을 남기다
사람들은 이제 느티나무가 이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알게 된 것 같다. 늙은 느티나무에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책으로 야트막하게 경계도 만들고, 행여 부러질세라 나뭇가지 받침대도 만들어 보호해 주었다. 늙은 느티나무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바람이 불 때마다 늙은 느티나무는 어린 느티나무에게 소곤소곤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동네 누구네 집에 어떤 사람이 살았더란다. 그 사람은 어떠했더란다. 그런데 누구를 만나 사랑을 했잖았겠니... 가만히 들어보면, 느티나무가 낮게 속삭이는 400년 역사의 이 마을 유래가 우리 귀에도 들려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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